한국일보

100년 뒤에는~

2016-12-17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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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 참 좋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산에 올라갈 때 마다 많은 고목들을 본다. 그들의 나이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몰라도 나무 굵기에 비례하여 100년, 200년, 300년 이상이 되는 것들도 많이 있음을 본다. 아니, 나무는 그렇다 치자. 이끼 낀 바위들. 그들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만년, 10만년, 100만년, 1,000만년~.

바위 나름대로 지구와 나이를 같이해 오는 것들도 있으리라. 어떤 산에는 산 정상이 조개류의 껍질로 온통 조각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산도 있다. 이런 산들은 수 억 년 전에 바다와 땅이 뒤 짚이면서 생긴 산이라 한다. 그러니 그 산에 오를 때 마다 생각되는 것은 수 억 년 전의 과거를 밟으며 걷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자동차를 타고 시내의 빌딩 숲을 지나칠 때 마다 건물들을 보며 혼자 말을 하는 게 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저 빌딩들, 앞으로 얼마나 갈까. 100년, 200년, 300년, 그 때엔 지금 살아 빌딩 숲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 있지를 않겠지. 그래도 빌딩들은 살아 자동차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꿋꿋이 서 있겠지.”


사람은 가지만 산과 나무를 비롯한 자연과 인간들이 지어 놓은 건물들은 그대로 남는다. 고려 말기에 길재(吉再)란 사람이 있었다. 고려 말 충신으로 조선이 건국된 후 1400년 2대 정종때, 이방원이 태상박사란 고위직을 주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거절한 절개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시 중에 이런 게 있다.

“오백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패망 후 고려의 수도였던 송도를 돌아보니 자연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나 고려의 인재들은 간 곳 없고 태평스러웠던 지난날이 꿈처럼 지나갔다는 내용의 시다.

그래, 꿈처럼 지나가는 과거사(過去事)다. 인걸, 사람은 간다. 그러나 자연은 그대로 남는다.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위대한 게 있다면 문화와 문명의 유산을 대대로 후손들에게 남겨 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인류의 문명과 문화라고 하는 게 고작 1만년도 안 된다. 선사(先史), 즉 역사 이전의 시대가 1만년이 안 되기에 그렇다.

인류학자들은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최초의 인류발생을 500만년에서 700만 년 전으로 본다. 700만년, 긴 것 같지만 지구의 나이 45억년에 비하면 찰나, 즉 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700만년의 끝의 끝에 와 있는 인류의 문명은 컴퓨터과학의 발달로 100년이란 세월 안에 45억년을 능가할 문명을 이룩해 놓고 있음에야.

30여 년 전 아기였던 두 딸이 장성해 이젠 어른 노릇을 하려 한다. 엄마와 아빠를 캐어(care)하려는 걸 보면 그렇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거다. 그런 것 같다. 시간이 가면서 부모는 늙어 세월에 묻힐 준비를 해야 하고 자식들은 커서 또 자식을 낳아 세월을 이어가려 한다. 이렇게 가도 앞으로 100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두 딸도, 아빠와 엄마도 세상에선 그 모습을 보지 못할 거다. 볼 수 있다면 사진이나 녹음해 둔 영상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자식의 자식들이 낳은 후손들은 살면서 문명의 이기(利器)를 만끽하며 살고 있겠지. 지금처럼 문명이 기하학적으로 발달한다면 100년 뒤에는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해진다.

100년 뒤. 트럼프, 푸틴, 시진핑, 박근혜, 김정은 등등 아무도 남아 있질 않을 것. 그래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원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대로 남아 있겠지. 그리고 아파트 앞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와 길 건너 그로서리 가게, 길 가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들은 남아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겠지...

지금, 100년이 넘은 7번 전철이 그대로 운행될지는 모를 일. 즐겨 찾았던 산과 들은 그대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에 안아주고 있음은 눈에 훤히 보인다. 그래, 사람은 가도 자연은 그대로일 거다. 비행자동차가 날라 다닐 수도 있을, 문명의 100년 뒤의 세상 모습을 그려본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을 100년 뒤이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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