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지와 신뢰

2016-12-15 (목) 09:20:45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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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 하루 종일 있었던 교육위원회 실무회의를 마치고, 저녁에는 학생들의 마약 사용 문제에 대한 패널 토론을 참관했다. 지역사회의 한 비영리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서 마약 사용에 대한 교육, 치료와 카운슬링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과거 마약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었다. 부모들과 지역사회가 유의하고 관심 두어야 할 부분들에 대한 유익한 제안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마약에 대한 무지를 절감한다.

18년 째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마약 사용 학생들의 징계 문제도 줄곧 다루어 왔다. 그러나 마리화나를 비롯한 마약류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마리화나를 직접 보아도 알아 볼 자신이 없고, 코케인과 헤로인의 다른 점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남용한다는 마약성분을 가진 처방약 이름들도 많이 들었으나, 그런 약들이 원래 무슨 용도로 처방되며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마약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은 단 한번이다. 로스쿨에 다니던 35년 전쯤이다. 어떤 모임에 갔는데 참석자들이 뭔가를 돌려 가면서 흡연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마리화나 봉이었다. 나에게도 권하는 것을 물론 거부했다. 그러나 그때 나보다 어린 학생들의 일탈행위를 제지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것은 비겁했다.

내가 무지한 것은 마약뿐이 아니다. 성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태어난 두 아들 녀석들에게 성교육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중간까지 한국에서 자랐던 내가 아들들에게 성교육을 언급하기에는 아마 문화적으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준비 여부를 떠나서 내 스스로 성교육을 받아 보거나 공부해 본 적이 없어 그랬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그 외 내가 무지한 부분으로는 미국 어린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들도 있고, 유행가들, 가수와 영화배우들, 텔레비전 드라마나 쇼들도 있다. 꽃, 식물, 나무, 물고기 이름들을 아는 것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워낙 생물 공부를 안했기에 생물 수업시간에 배울 수 있는 용어도 별로 아는 게 없다.

얼마 전 미국 역사에 대한 무지를 느껴 책 한 권을 구해 훑어보았지만 읽은 것을 얼마나 기억할지 모르겠다. 유럽 역사나 대학 때 조금 공부했던 중국과 일본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 대해서는 단 한 권의 책, 한 편의 논문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에 대해 무지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렇게 무지를 느낄 때 마다 관련 책들을 한권씩 구해 놓기도 하는데 그 책들이 계속 쌓여져만 간다. 교육위원으로서 학생들이나 주민들과 대화할 때, 그리고 언젠가 손주들이 생겨 질문을 받을 때 어느 정도 아는 척 할 수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계속 구글에나 의존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주 월요일 패널리스트들이 또 다른 무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무지이다. 자녀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부모들이 실제로 많다고 한다. 자녀가 외출할 때 정확히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며, 돌아온 후 실제로 그랬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자녀들에게 신뢰를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신뢰하면서도 챙겨야 할 부분이란다.

그래서 틴에이저 자녀들이 밤늦게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허그(Hug) 테스트”를 하라고 한다. 냄새도 맡아보고 손을 잡아 축축한지도 느껴보라는 것이다. 똑바로 걷는 지도 눈여겨 살피라고 한다.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자기 자녀는 마약 사용권 밖에 있다고 방심하지 말라고 한다. 대신 자녀들의 행동거지에 세심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마약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라고 한다.무조건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니라 방관이다. 무지가 약이 아니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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