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간격(間隔)

2016-12-10 (토) 소예리 교무/리치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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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갑자기 전화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누구지? 저녁에는 전화가 잘 안 오는데…”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가늘고 여린 목소리의 여자 분이 나를 찾는다. “거기 혹시 000교무님 통화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내가 원불교 교무로 출가하기 전에 부르던 이름을 말하며 날 찾고 있었다. “전데요. 혹시 누구신지…” “어머 00아~ 나야 나, 위란희. 기억나?”

나는 갑자기 훅 자신을 밝히고 들어오는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며 순식간에 기억을 더듬었다.
“ 누구라고? 위 란 희?” 그렇게 우리는 대략 헤어진 지 26년 만에 서로의 안부를 전화로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친구는 할 말이 정말 많은 듯하였다. 어떻게 날 찾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얼마 전에 선생님 한 분이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전근을 오셨단다.

이야기 중에 그 선생님 동생이 미국에서 원불교 교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여 나를 좀 찾아줄 수 있는지 물었단다. 간신히 전화번호 하나를 받아 놓고 전화를 했는데 바로 받으니 정말 정말 반갑다며 좋아한다.


우리의 대화는 길어졌다. 서로 어떻게 지내느냐며 궁금함을 털어놓았다. 그 옛날 학창시절과 학교근무시절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녀는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만나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행복해?” 하고 물었다. 나는 답했다. “행복하지 않을 일이 있겠어?”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다. “난 네가 미국 가서 몇 년 살다가 환속할 줄 알았지.” 하며 아직도 미국에 살고 있느냐고 말한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출가자의 삶보다는 평범한 여인으로 가정을 꾸리며 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나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리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친구가 했을 걱정과 기대가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헤어졌던 친구와 대화를 하며 그동안 흐른 세월의 간격이 참 넓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간격이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벌어진 사이를 말하며 인간관계가 벌어진 정도나 틈을 말한다. 친구와 나에게는 시간적으로 20년이 넘는 세월이 있었고 한국과 미국이라는 공간의 차이가 있었으며 그 사이 인간관계도 시공만큼의 틈이 존재한 것이 사실이다.

그 친구는 내가 출가하여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자세히 모른다. 종교도 다르고 직업도 달라졌고 소소한 삶의 범주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녀는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결혼을 하였고 자녀가 있고 각각의 결은 다르겠으나 일반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거기에 비해 나는 원불교로 출가하여 교무가 되었고, 나를 옛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주변에 거의 없는 상황이라 그 친구가 부르는 내 이름이 참 낯설다는 생각도 잠깐 스쳐갔다.

그러나 “ 어머 00아~ 나야 나. 위란희. 기억나?” 로부터 다시 시작된 우리의 관계는 겨우 연결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10년은 가까워진 느낌이다. 분명 앞으로는 더 빠르게 그 틈이 메워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대략의 이야기는 주고받았으며 카톡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밤새 사연과 사진들을 남기며 그 간극 메우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의 가을 풍경을 사진이나 요사이 꽃에 마음이 꽂혀 매일 꽃을 사게 된다며 소담하게 꽂은 사진도 보내오고 밤새워 이야기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해오고… 정말 우리 사이에 순식간에 많은 이야기들이 되살아나고 있고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은 서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사이로 발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사람들 간격을 좁히는 일은 특별한 비법이나 형식이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그냥 서로를 향한 좋은 마음 하나 있고 편지든 전화든 만남이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서로 나누다 보면 그 안에 이해도 있고 공감도 생기고 우정도 사랑도 다시 이어지는 것이리라. 다시 만나 반가운 내 친구 위 란 희.

<소예리 교무/리치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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