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나나 공화국?

2016-11-16 (수) 09: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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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가난한 후진 국가를 보통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간단하게 말하면 가진 것이라고는 바나나밖에 없는 나라를 의미한다.

국가로 선포는 되었지만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산업이라고는 원시적 농업이 고작. 보통 아열대 지역이어서 바나나 등 과일이 흔하니 과일을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체제가 허술하니만큼 독재 권력이 온갖 전횡을 휘두르는 것이 특징으로 주로 중남미 국가를 지칭한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100여 년 전 오 헨리라는 미국인 작가였다. 실제 이름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횡령 혐의로 텍사스 수사당국의 추격을 당하던 그는 처음 뉴올리언스로 피신을 했다가 그도 안 되니 온두라스로 도망을 갔다. 그곳 싸구려 모텔에 머물면서 단편소설들을 썼는데, 그중 하나인 ‘제독’에 안추리아라는 가상의 나라가 등장한다. 이 나라를 그는 ‘해안의 작은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표현했다.


얼마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투옥되고 수감생활을 한 후 1904년 ‘양배추와 왕들’이라는 제목으로 단편소설집을 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결국 오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그런데 용케도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살아남아 지금껏 쓰이고 있다.

‘바나나’와는 거리가 먼 미국에서 요즘 뜬금없이 ‘바나나 공화국’이 회자되고 있다. 정치 평론가들이 차기 트럼프 행정부를 전망하면서 “이러다 바나나 공화국 되는 것 아닌가”하는 푸념들을 한다. 권력자가 법질서 무시하고 이리 저리 자기 이익 챙기는 후진적 양상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이해의 상충’ 문제이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에 그의 자녀들이 우르르 들어가면서부터 말이 많았다. 인수위 집행위원 16명 중 1/4이 그의 가족이다. 그가 가장 신임한다는 맏딸 이방카(35)와 남편 재러드 쿠슈너(35),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39)와 차남 에릭(32) 등 4명이다. 나이가 어린 차녀 티파니(23)와 막내 배런(10)을 빼고 성인 자녀들 모두가 인수위에 들어갔다.

아울러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트럼프 기업이 운영하는 호텔과 골프클럽 등 부동산을 비롯해 각종 사업체는 자녀들이 맡을 예정이다. 트럼프 기업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 우루과이, 터키, 러시아 등 외국 정부 혹은 외국 기업들과 수시로 사업 상 거래를 한다.

트럼프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난다지만 그 자녀들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이들 정부나 기업들이 ‘미국 대통령’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해 충돌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이해 충돌의 가능성은 높다. 일례로 트럼프 소유 호텔들 중 노사문제로 전국노동관계 위원회에 고발된 케이스들이 있다. 전국 노동관계 위원회 위원 5명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트럼프에게 임명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소신껏 일을 할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이해 충동의 망령은 수시로 출몰할 것 같다. 앞으로 4년 트럼프는 무사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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