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17일 다섯 명의 절도범들이 워싱턴 DC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했다. 이들은 곧 체포됐으며 수사 결과 리처드 닉슨 재선 위원회 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 해 열린 연방상원 워터게이트 위원회 조사 결과 닉슨이 워터게이트 주거 침입 절도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며 백악관에 테이프 리코딩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방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백악관은 이 테이프를 수사관들에게 제출할 것을 명령했고 테이프에서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고 연방 관리들을 이용해 수사를 방해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탄핵 위협에 직면한 닉슨은 1974년 8월 9일 사임했다.
이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두고 “워터게이트 이래 최대 스캔들”이라고 부른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로스쿨을 갓 졸업한 힐러리는 연방하원 탄핵 조사위원회 멤버였다. 힐러리는 존 도어 수석 법률 고문과 버나드 너스바움 선임 위원의 지도를 받아가며 탄핵 과정과 사례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 때 그녀가 배운 것은 탄핵을 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메일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힐러리가 3만 통의 이메일을 삭제해 버린 것은 이 때 얻은 교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대선 판도가 연방 수사국(FBI)이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을 다시 수사하기로 함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한 때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던 트럼프는 “시스템이 생각만큼 불공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이를 반전의 기회를 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도널드가 1% 포인트 수준까지 따라잡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대선 결과가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거 결과를 좌우할 주요 경합주에서 힐러리의 우세가 흔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와 전문가 전망을 고려해 대선 전망을 분석하는 ‘538’에서는 힐러리 승리 가능성을 70% 정도로 잡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처음부터 큰 부담을 안고 직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FBI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도 미지수인데다 수사가 종결되더라도 공화당은 이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힐러리 측은 제임스 코미 FBI국장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 발표를 한 데 분노하고 있으나 이번만은 이를 “거대한 우파의 음모”로 몰아붙이기 어려울 것 같다. 지난 번 코미가 힐러리의 불기소를 건의했을 때 그를 매우 칭찬한 데다 그는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임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의 본질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자기 개인 재단 모금에 이용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국무부 규정을 어기고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데 있다. 요즘 한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최순실 스캔들’도 현재 수사의 핵심은 대통령의 위세를 이용해 사실상 자기가 컨트롤하는 재단을 만든 데 있다.
FBI 재수사 결과 중대한 과실이 발견되더라도 힐러리가 기소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대통령이 될 경우 힐러리 증오자로 가득 찬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 유력시되는 연방하원에서 탄핵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내년 정국은 한국 미국을 막론하고 몹시 시끄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