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나 집안행사로 가족친지들이 모일 때면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다.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다. 한인들의 경우, (한국)정치와 종교에 관해서는 대부분 자칭 ‘전문가’들이다. 각자 믿음도 강하고 주장도 강해서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려 들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 보면 언성은 높아지고 대화는 언쟁이 되기 마련. 오랜만에 만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어색하게 굳어질 수가 있다.
미주 한인들이 한국에 나가 오랜만에 가족친지들을 만날 때도 주의사항은 마찬가지다.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날이 갈수록 중도는 없고 보수 진보 양극으로 갈라지는 분위기에서 굳이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눈치껏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수성향의 친지 앞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지지 발언을 했다가는 싸움 나기 십상이고, 진보성향의 친지 앞에서 새누리당 지지 발언을 했다가는 심하게는 사람 취급을 못 받을 수 있다. 1~2년에 한번씩 서울을 방문하는 남가주의 한 회사원도 매번 비슷한 경험을 한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였어요. 강남 친구들을 만나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며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더군요. 반면 진보성향 친구들을 만나면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대통령감이 아니다. 나라가 걱정 된다’는 것이었지요.”그런데 지난주 서울을 방문해보니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라졌던 친지들이 한 목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 보수성향 친구들도 진보성향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창피하다’ 아니면 ‘나라 망신’이다. 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이다. 가족 친지들이 오랜만에 싸우지 않고 한마음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요즘 가족끼리 정치 이야기 조심해야 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워낙 특이한 후보여서 선거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는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트럼프에게서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 그 자신 여성들을 함부로 더듬고 껴안고 한 것을 자랑삼아 털어놓았고, 여러 여성들이 성희롱? 추행 피해 경험을 줄줄이 폭로했다.
많은 유권자들, 특히 여성들은 국경에 장벽 쌓고 무슬림 입국 막는 등 공약은 그의 정치적 소신으로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의 습관적 성희롱과 여성을 무시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유권자 앞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트럼프 지지 의사를 밝히면 어떻게 될까. 논쟁으로 이어지면 그나마 다행. 경멸하는 듯한 표정이나 제스처를 보이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바로 얼어붙는다. “내가 알던 그 사람 맞아?” 싶은 생각에 서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할 게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사람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는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정치 이야기로 열 받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