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소녀’
2016-08-30 (화) 09:21:53
나는 아르바이트 소녀,
24시 편의점에서
열아홉 살 밤낮을 살지요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면 좋겠지만
굳이 앞날을 계산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바코드로 찍혀 있는,
바꿀 수 없는 앞날인 걸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나는
광장의 팬지처럼,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지요
화장만 고치고 나오지요
애인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우린 컵라면 같은 연애를 하지요
가슴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삼 분이면 끝나거든요
가끔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엄마 아빠도 힘들게
엄마 아빠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아, 아르바이트는
죽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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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낮은 곳에서 젊은이들은 불안하다. 미래에 대한 보장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이들은 밤낮없이 일을 한다. 왜? 무엇을 위하여? 라는 존재론적 사색은 할 시간도 없거니와 할 까닭도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코드처럼 정해진 삶은 변하지 않을 거니까. 이러한 실상이 현대판 허무주의를 만든다. 현대판 허무주의자는 그러나 우울에 침잠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한다. 그리고 비록 삼분일지언정 그들은 연애를 한다. 그들은 살아있다. 임혜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