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0달러를 손에 쥐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내가 그 돈을 땅에 떨어뜨리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당연히 줍죠.”
“왜, 무엇 하려고?” “화장품도 사고 담배도 사고 군것질도 하고, 뭐 잘 하면 작은 문신도 하나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내가 그 돈을 줍지 못하게 한다면? 넌 그냥 떨어지는 그 돈을 보고 있어야 해. 누가 밟아도, 빗물에 젖어 찢어져도.” “뭐야, 미쳤어요? 왜 돈을 버려?”
“지금 내가 너를 보고 있는 심정이 그렇다는 이야기야. 내 눈에 너는 똑똑하고 예쁜데, 너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평생 마약만하다가 그렇게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걸 듣고 있으니 나는 너무 답답해. 여기 계신 너의 선생님들은 너를 도와주고 싶은데, 나도 너를 도와주고 싶은데, 널 붙잡아 올려주고 싶어도 넌 그저 마음대로 살 테니까 놔두라 하고 있잖아…”
몇 년 전 나와 한 소녀 사이에 오간 대화이다. 16살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로스쿨 3년차 학생이었고 소년원과 청소년보호 전문기관에서 소위 비행 청소년의 재활 상담을 실습하는 교외연수 중이었다.
눈썹, 코, 귀에 피어싱을 하고 짙은 화장을 한, 얼핏 보기에 성숙하지만 가까이 마주하고 앉아서 보면 앳되기 그지없는 어린 소녀는 길게 자란 예쁜 눈썹이 드문드문 나있었다. 필로폰의 상습투약 경험이 있다고 한 그 아이는 습관적으로 눈썹을 뜯었다고 했다.
세상에서 어떤 걸 할 때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 아이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마약을 하며 환각에 취해 있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다. 그래도 굳이 일을 해야 한다면,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교도소의 교관이 되어 수감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호신용 스프레이 등을 사용해서 통제권을 행사하고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찌 들으면 참 간담을 서늘케 하는 소녀의 희망사항.
왜 그랬을까? 왜 그 소녀는 교도소에 가고 싶었을까! 정확히 어떤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쳐서 그 소녀가 그 기관에 맡겨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 있던 많은 또래들처럼 그 아이의 부모 중 한 분 이상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 헤매다 돌보아 줄 곳이 없기에 소년원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싶었던 그 아이. 우리 사회가 흔히 ‘문제아’라고 딱지표를 붙여놓는 그러한 소녀였다.
가끔씩은 담당 교사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거나, 혹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소동을 부려 상담시간에 빠지곤 했던 그 소녀와 처음 몇 번의 만남에는 감시원이 상담시간 내내 함께 했었지만, 어쩌다 그 소녀와 나는 몇 달을 함께 보내며 정이 들었고 우리 사이에는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사실 그 소녀는 무섭고 아픈 현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여린 아이였다. 강하게 보이려고 더 강렬하게 한 화장,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 난폭하게 내뱉는 말들, 그리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마다 터져 나오는 위협적인 행동들... 사실 그 아이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관심 받고 싶었고, 존중 받고 싶은 평범한 소녀였을 뿐이다.
잘못을 하지 말라는 억압과 강요의 질책만을 들어 왔을 뿐, 그 어떤 어른이 그 소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려 노력하는 배려를 보였던가. 그 소녀가 어떤 행동을 하여도, 누구하나 그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가만히 있으라 하였을 뿐.
잘못을 벌하기에 앞서, 우리 어른들은 그러한 아이들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그 소녀는 어쩌면 너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떻게든 주목을 받고 싶었고, 어떻게든 보살핌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자라온 소녀. 사실은 누구보다도 심신이 아팠을 아이. 어쩌면 마약 말고는 현실의 더 좋은 도피 방법을 찾지 못했을 아이. 사실 그 소녀도 남들과 똑같이 대우받고 꿈을 펼치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소녀에게 어떤 꿈을 꾸며 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꿈이 틀렸다며 나무랐을 뿐. 좋은 환경에서 자랐거나 혹은 좋은 멘토의 꾸준한 보살핌을 받았다면 더 평범하게 자라서 남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일도 하고 성인이 되어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하며 평등한 사회적 권리를 누리며 살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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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