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8.15 해방 71주년을 맞는다. 불과 70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자유가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인의 자유를 빼앗고 언어를 말살하고,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모든 자원을 수탈하였다. 그들은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쇠붙이와 놋그릇까지 강탈하였다.
모든 교회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일본 천황이 사는 동쪽을 향하여 궁성요배(宮城遙拜)를 하도록 강요되었다. 예배 시간에는 형사 한 사람이 뒷자리에 앉아 설교 내용을 체크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다룬 출애굽 이야기 같은 것은 설교할 수 없었다. 한국인 모두는 형식상의 일본 국민이었으나 실상 민족 전체가 노예화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풀려난 것이니 해방의 기쁨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유를 표시하는 영어에는 ‘liberty’와 ‘freedom’ 두 가지가 있다. ‘liberty’는 밖으로 부터 나에게 주어지는 시민의 권리이다. 그러나 ‘freedom’은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본래 철학용어로서 온전히 개인적인 자유를 나타낸다. 주어진 ‘liberty’를 내가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문제가 나의 ‘freedom’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라는 말 속에는 필연적으로 의무와 책임이 동반한다.
한국인은 오랜 세월 독재자들 밑에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되어 <누군가 강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잘못된 신화를 머릿속에 새기에 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허위의식이다. 모두가 맨손으로 거리에 나아가 만세를 외치던 ‘3.1정신’처럼 ‘나’와 ‘모두’를 귀중하게 여기는 사상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
세계의 자유와 억압을 감시하고 있는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아직도 이 세계의 50개국 국민들은 몹시 제한된 자유 속에 살고 있다. 그 중 최악이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이며, 최고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오스트리아의 순이다. 역시 자유와 민주주의는 병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 의회에서(1775)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 것이 미국의 건국이념이 되지 않았는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dis마의 수치 여사는 거의 평생을 가택 연금 생활을 하였는데 기자 회견이 허락된 첫 마디가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확립함으로써 이룩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거의 평생인 27년 동안을 감옥에서 지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도 “내가 사는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서이다”고 해방선언을 하였다.
올림픽의 표어 citius, altius, fortius(더 빠르게, 더 높이, 더 힘차게)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신부였던 헨리 디든이 제정하였다. “인류가 힘을 합하여 보다 빨리 성장하고, 보다 높은 기상을 가지며, 더욱 힘차게 전진하자”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올림픽의 공식적 창설자인 피에르 쿠베르탕은 “올림픽은 몸과 함께 믿음을 다듬는 기회”라고 선언하였다. 지금은 올림픽에서 종교적 색채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본래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룬 것이 올림픽 정신이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관람하는 인류도 경쟁과 재미에서 차원을 높여 평화의 이념을 추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올림픽 봉화대에 피어오르는 횃불도 성화(聖火)라고 불리지 않는가. 올림픽은 금메달이 목표가 아니다. 온 세계가 함께 모여 자유와 평화의 이념을 구가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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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