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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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113) 미국의 산업화시대 (1865-1900) (16)

2016-07-15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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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미국은 산업화시대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공장에서 새로운 물건들이 전 보다 더 싼 값에 대량으로 생산되고 물건값들이 싸지기 시작하였다. 소도구들과 자물쇠 같은 물품들은 미국이 더 싸고 우수하게 만들어서 수입이 필요없게 되었고, 벽시계는 아주 싸져서 고장이 나면 고치는 비용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일 정도가 되었다.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도 많이 올라서 중산층들의 비율이 높아졌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건들이 조성되어 가고 있었다. 정치적인 민주화와 병행해서 상업의 민주화도 이루어 지고 있었다. 드디어 누구든지 돈만 있으면 아무 상품이라도 어디에서든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과 달랐었다,. 돈의 여유가 있는 중산층의 비율도 낮았지만 평민들은 육식을 하고 싶어도 사냥은 여러 지역에서 귀족들에게만 허용되었음으로 야생 동물의 살코기조차 먹기가 힘들었고, 물고기도 잡아 먹기가 힘든 가운데 인구는 팽창 하여서 미국으로 이민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돈이 좀 생겼을 때에 물건을 사기는 쉬웠을까? 평민들에게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179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London, Manchester, Liverpool 등의 도시에는 지금의 백화점과 비슷한 형태의 대형 “Department” Store 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상품의 유통이 조금 쉬워졌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백화점 형태의 대형 상점들은 1842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백화점이 정착하기 전의 영국의 소매상점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미국에서 현대식의 호텔이 성공하기 시작했을때 까지는 영국에는 잠잘 방만 제공해주는 Inn 이라는 것만 있었다고 한다. 잠은 Inn 에서 자고 밥은 레스토랑에 가서 먹고 사교는 Pub 에 가서 해야 하는 등…

백화점이 생기기 전의 런던에는 작은 규모의 전문가게들만 있었다. 옷, 구두, 고급 여성의류, 가구 등등으로… 가게에 유리창 같은 것은 없고 조그마한 유리창이 달린 굳게 닫혀있는 입구 문 안에는 문지기가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손님이 “Person of Quality” 라고 불렸던 상류사회 인사처럼 보이거나 전에 물건을 사본 적이 있는 사람들 에게만 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은 애초에 가게에 발도 들여놓을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돈만 가지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미국의 첫 백화점은 언제 어디서 열렸을가? 뉴욕시 브로드웨이 280번지에 1848년에 정면을 대리석으로 장식한 “Marble Palace” 가 세워졌는데 오늘날의 백화점격인 4층짜리 대형 상점이었다.

이 건물을 지은 Alexander Turney Stewart 라는 사람은 아일랜드의 Lisburn 에서 1803년에 농부의 아들로 출생하였는데 출생후 3주 만에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였고,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에 친정부모에게 Stewart 를 양육해 달라고 맡긴 후 재혼하여 뉴욕으로 떠나 갔다. 손자가 커서 목사가 되기를 원하면서 Stewart 를 키우던 외조부가 그가 13세 때에 사망하자 그는 퀘이커 교도이었던 친지의 집에서 2년여 양육을 받으며 학교공부를 계속 하였다. 상업경험을 얻으라는 보호인의 권유로 그는 식품가게에서 2년여 일을하면서 500여 달러를 저축하였다. 15세 때에 저축해 놓은 돈으로 Ireland 산 lace 를 사가지고 어머니를 찾아 뉴욕에 온 그는 lace 를 팔아 돈을 조금 벌었고 뉴욕에서 강습소 교사 노릇도 했다는 것 이외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아마 남의 밑에서 일도 했고 조그마한 가게도 경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가 되던 1822년 전에 그는 Ireland 로 돌아가서 “외할머니를 여생동안 일년에 얼마씩 도우라” 는 유언과 함께 외조부로부터 받은 유산 (5천 내지 1만 달러정도로 추산) 을 정리해서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20세때인 1823년에 Broadway 와 Chambers St. 가 만나는 근처에 도소매를 함께하는 상점을 열고 결혼도 하였다.

그는 Ireland 산 linen 과 lace 등을 수입하였고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대어서 상당한 거부가 되었고 1846-48년 사이에 위에 언급한 Marble Palace 를 건축하기까지 되었다. 재산이 꾸준히 늘어나서 이 백화점은 도매도 하였지만 소매상점으로는 당시에 세계에서 제일 큰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몇 개의 방직공장과 공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여러 군데에 지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 Marble Palace 의 1층에서는 유럽산 여성의상 등을 판매하였으며 여성의상 판매장인 2층은 사방의 벽을 전신을 다 볼 수 있는 큰 거울로 만들어 놓아서 여자들이 새 옷을 입고 자신의 몸매를 볼 수 있는 “개인 Fashion Show” 를 해볼수 있도록 해놓았다. 드디어 1862년에 아래에 언급하는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백화점 Cast Iron Palace 를 짓기에 이르렀다. 이 백화점은 처음에 19 개의 Department 로 시작하였으나 1877년에 이르러 서는 30개의 Department 가 있었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백화점의 소문을 듣고 미국 전역에서 여성들의 우편주문이 몰려들어 1868년부터는 20명의 Mail Order 전담 직원들을 두고 1년에 5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는데 이것은 Montgomery Ward, Sears, Roebuck & Co., Spiegel 등의 Mail Order Business 보다 앞선 것이었다.

한편 뉴욕주에는 James Bogardus 라는 발명가가 있었다. 그는 시계 제조공 도제로 시작한 사람이었으나 면화실 뽑는 기계, Lead Paint, 은행채권 등을 인쇄하는 원판 등을 발명하였고 지금은 mechanical pencil 이라고 불리우는 만년필도 발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의 발명 중에 cast iron (주조철) 으로 건물을 짓는 특허받은 건축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Cast Iron 건축술이 ”혁신적”인 것으로 특기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때까지의 고층건물은 석재만을 쌓아서 지었다고 한다. 아주 높은 건물을 짓기도 어려웠지만 건물의 하중을 감당하기위해서 층 수가 높아질수록 아래층 기둥과 벽의 두께도 정비례로 두꺼워야만 했고, 역시 하중 때문에 아래 층에는 큰 유리창을 설치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기의 8층짜리 공장건물을 1850년에 Cast Iron 으로 지어놓자 그 건물은 당장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Cast Iron 이 하중을 잘 견디었음으로 아래 층의 기둥과 벽도 윗 층들과 똑같이 얇았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1층에도 큰 유리창을 설치하여 전 건물을 자연조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동안의 계속적인 사업성장으로 거부가 된 Stewart 는 Bogardus 를 고용하여 뉴욕의9 St. 와 10 St. 사이의 Broadway 에 6층짜리 Cast Iron 백화점 건물을 1862년에 지었다. 마침 그 얼마 전에 대형 판유리제조공법이 영국에서 발명되어 판유리의 값이 많이 싸진 덕택에 일층 사방에 큰 창문을 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Show Window” 였고 빈부의 차이없이 지나가는 모든 잠재적인 고객들이 무료로 Window Shopping 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다,. 이 Show Window 는 자연조명의 장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무료광고 효과가 있었다.

“Cast Iron Palace” 라고도 불리던 이 백화점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궁전에서나 볼 수 있는넓은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가도록 하였으며 그 위로 5층 천정까지 확 뚫린 공간으로 남겨두었고 공간 위의 지붕은 유리로 덮어서 아래 층까지 햇빛이 직접 들어 오도록 하였다.

이 휘황찬란한 건물 안에 손님이 필요로 하는 모든 만물을 진열해 놓았던 것이다. 이소비자의 궁전을무료로 구경하러 전 뉴욕시민들이 몰렸을 것이며 왔다가는 모두 주머니를 털고들 갔을 것이다.

당시의 한 가지 흥미로운 풍습으로는 ‘품위있는 여성’은 혼자서 쇼핑을 다니지 않았 다고 한다. 남편이나 남자친구들이 동행해 오기는 하였으나 일단 백화점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백화점에서는 여성들이 쇼핑하는 동안에 남자들이 군말없이 기다려 주도록 만들기 위해서 도서실, 휴계실, 다과실 등을 설치해 놓았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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