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수필]팔팔한 슬픈 예감

2016-07-13 (수)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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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 영국이 ‘나 홀로’에 투표했다. 세계가 잘잘못을 따지느라 시끌벅적하다. 태양이 지지 않던 대영제국이 어느새 외로운 선택을 했다. 한 표 한 표 모여서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

외롭고 배고픈 식구들의 현실을 외면한 정치인들이 싫다. 집안 살림살이도 힘든데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자고 소곤대는 소리가 투표함을 박차고 나왔다.

윔블던 테니스대회가 지난 주에 시작됐다. 하얀 운동복에 잔디밭 테니스코트에서 시합하는 역사와 전통을 130년 동안 지키고 있다.


출전한 선수들은 혹시 패배하더라도 최소한 5만 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옛날 윔블던에서 동네잔치를 하던 시절, 수만 리 떨어진 조선땅 거문도에 영국 군함들이 들이닥쳤다.

영국인들의 발자취가 그때 그렇게 우리 땅에 남기 시작했다.

양반 정신이 윔블던 코트에 살아 있다. 예의 있는 행동과 상대를 배려하는 신사의 운동이 여전히 건재하다. 시대가 바뀌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개성 있는 복장으로 세상을 채워도, 잔디밭 정구장은 변함이 없다. 그들의 양반 정신이 그곳에 잔디처럼 살아있다. 지덕을겸비한 양반들의 선비정신이 자존심을 선택한 결과를 우리는 영국에서 보았다. 그림 같은 잔디 코트 대신에 이제는 하드코트가 대세를 이룬다.

대세의 흐름이 제3의 물결이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이나는 시대는 갔다고 한다. 현대는 3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고한다. 첨단의 기계들이 수백 사람들이 할 일을 단 번에 해버리는 시대이다. 입이 떡 벌어진다. 엎친 데 덮친다고 컴퓨터 발전이 대세의 흐름을 더욱더 재촉하고 있다. 씨 뿌리고 추수하던 농경사회에서 대량생산의 산업혁명을 지나고 보니 이제는 컴퓨터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을 정보혁명의 시대라 하고 제3의 물결이라고 한다.

제3의 물결을 타고 용이 하늘로난다. 세상을 바꾸는 천재들의 손안에서 우리들의 삶이 바뀌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컴퓨터 윈도우로 책상 위를 점령한 지 20년 만에 세계의 최고 부자가 되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전화기 속에 컴퓨터 기능을 집어넣자 스마트폰 중독자가 양산되고 있다. 하늘에는 온갖 소곤대는 말들이 구름 속에 숨어서 우리들의 눈과 귀를 유혹한다.

물결 따라 친구 따라 중독이 되어간다. 친구 없이는 살아도 핸드폰 없이는 못 산단다. 사랑하는 연인이 오랜만에 만나도 할 말이 없다.

떨어져 있어도 궁금하지가 않다. 모든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그것도 부족하면 동영상으로 마주보고 있다.


만나면 밥 먹고 스킨십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가슴이 떨리는 설렘도 입이 근질근질한 할 말도 없다.

정보의 물결 속에 빠져 헤어나질 못한다. 세상의 희로애락이 손안의 핸드폰 속에 들어있다. 가상의 세계위로 애틋한 삶의 맛이 날아가버렸다.

세 가지의 “C”가 없으면 원시인이라고 한다. C의 첫째는 Car 자동차, 둘째 C는 Credit Card 신용카드, 셋째는 Cellular 스마트폰이라고 한다. 세 가지만 있으면 사는 것이 너무 편리하다. 심심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자아 실종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을 생각하고 비춰볼 거울이 없다. 제3의 거대한 파도 속에 원시인은 발붙일 곳이 없다.

핸드폰 없이 오랫동안 버텼다. 불편해도 잘 참았다. 하지만 원시인의 화려한 고립은 점점 더 문화적인 삶으로의 동참을 강요받고 있다.

슬픈 예감의 벨 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 하루 한날의 삶이 더 많은 타인에게 종속되는 것이 무섭다. 팔팔하던 자존심도 도도히 흐르는 대세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손안의 핸드폰은 어느덧 손목위의 수갑으로 삶을 옥조인다.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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