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밥상 위의 문화충돌

2016-06-29 (수)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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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수필

끼리끼리 모이는 본성이 무섭다.

플로리다 올랜도는 세상 사람들이 한번쯤 가 보고 싶어 하는 관광도시이다. 매일 미 전국과 세계 곳곳에서 20만명의 관광객들이 올랜도에 모여든다.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형제요 자매 같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종교가 무엇이든 출신지가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수 백명을 향한 총부리에 세상의 눈길이 올랜도로 쏠렸다. 무리에서 뛰쳐나온 외로운 늑대들이 무섭다.

모두가 피붙이 하나 없는 이민자로 시작했다. 보고 배우고 익힌 대로 이민생활에서 엮여 있고 붙어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고향 까마귀들은 향우회로 모여서 귀에 익은 말투에 고향집 맛 속에 동질성을 확인한다.


많지 않은 아시안도 그럴진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메이플라워 후손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가 이민자들이 싫다고 말하는 살벌한 미국 땅에 살고있다.

옛날의 이민자들이 아니란다.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고분고분한 이주민들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제는 숨죽이고 살기보다는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돈이 생기니 힘도 생겼다. 그래서 할 말은 하고 살고 싶다.

실속은 없어도 속은 후련하다. 잘잘못을 가름하기 전에 정체성의 혼돈이 또 다른 아픔을 잉태하고 있다.

겨우 배운 대로 자녀들이라도 멀리높이 날리고 싶다.

방학을 맞아 장학생 선발 시즌이 온 것 같다. 공부하는 사람은 굶는 법이 없다고 한다. 똑똑하고 싹수 있는 대학생 수 백명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전면 광고가 신문마다 가득하다. 좋은일 보람찬 일로 장학재단이 유행이다. 땀 흘려 번 장학금으로 그들에게 희망을 건다. 고달픈 이민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기를 기원하는 일세대의 바람이 느껴진다.

고진감래라고 겨우 살만해졌다.

여러 장학재단 활동을 하면서 만난 대학생들의 수필 속에 1세들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민 1세대의 아픔이 그들의 에세이에 공통으로 나온다.


일밖에 모르는 부모, 영어를 못하는 부모, 그리고 외로운 자매들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한 가족 모두가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참 긴 세월을 보냈다. 겨우발 뻗고 잘만하니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오싹 소름이 끼친다.

삶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 사람마다 복장이 다르고 말이 다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옆으로 지나간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그들의 문화 속에 호기심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웃음 뒤에 숨겨진 밥그릇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총알 대신 투표로 권력을 잡고 있다. 한 표는 똑같다고 감미로운 말과 미소로 총알을 달라고 안달이다.

문화는 머릿속에 입력된 프로그램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답게 믿음이 다르면 죽기 살기 싸운다. 이슬람 경전에 비스밀라는 자비와 자애를 의미한단다. 지금도 자비와사랑의 두 종교 이름으로 중동 어딘 가에서는 수십 년을 싸우고 있다. 믿음의 갈등이 집집마다 가득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 내 고부갈등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돈 있는 부모는 서로 모시려 싸우고 가난한 부모는 모른 척 발뺌하려 싸운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는 저절로 침이 돌고 돈다.

밥상위에 대화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좋은 식당에 한 가족이 모였다. 옆 테이블도 그야말로 인터내셔널이다. 제각각 다른 스마트폰, 염색한 머리, 아이들은 영어, 어른은 모국어로 동서양이 섞여 있다. 한마디 할라치면 눈길은 스마트폰 손놀림이 바쁘다. 말은 귓전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사라진다. 홈 스위트 홈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외모는 분명 자식인데 생각은 딴판이다. 자랑스러운 자녀들과 한주에 한번 같이 밥 먹기도 힘들다. 때때로 아이들이 산 너머 사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TV에서 보던 문화충돌을 밥상에서 마주한다.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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