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려 놓고 얻는다

2016-06-08 (수)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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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버스 안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모두들 가벼운 복장에 밝은 표정으로 여유 있는 얼굴들이 보기에 좋다. 미국 전체에서 테니스를 사랑하는 동호인들이 라스베가스에 모여든다. 2박3일 동안 벌어지는 한인들의 테니스 잔치에 주연으로 참석하는 것이다. 호텔과 만찬도 협회에서 제공한다니 동호인들은 즐거운 여행길이다.

유혹의 벨소리가 호텔에 가득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날아오는 슬랏머신 소리에 인솔자의 목소리는 귓전으로 들리고 잿밥에 신경이 곤두선다.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프리웨이 트래픽만큼이나 느리게 느껴진다. 짐을 풀고 내려오니 곳곳에서 경제 활동에 여념이 없다. 라스베가스는 엑스트라 즐거움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나 돈을 따는 방법을 안다.


아니다 다를까 라스베가스가 가까워지자 너도 나도‘ 100% 돈 따는 방법’에 열을 올린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백발백중 비법이라는 말에는 귀가 솔깃하다. 누구나 따고 잃는다. 땄을 때 일어서면 된다. 모두가 그렇다고 박수를 쳐댄다. 그러면 위너가 되는데 ,요상한 유혹에 넘어가다보면 혹시나 하다가 역시 라스베가스에 ‘저축’하고 일어나는 것이 돈을 잃는 길이다.

아침인사가 ‘땄어요’이다. 산산한 바람에 실려 온 사막의 아침이 맑다. 밤늦도록 숫자 공부하고, 수 년동안 갈고 닦은 기량으로 낮선 선수들과 한판 시합을 기다린다. 하나 둘 모인남녀선수 300명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전날 밤 전수받은 백발백중 비법 덕에 밥값은 챙겨서인지 은근히 발걸음이 가볍다. 밤에는 기계와 돈내기하고 아침에는 한판 시합을 이기려고 순서를 기다린다.

발품 팔아서 뛰는 게 운동이다. 품앗이를 하면 할수록 내 농사도 짓고 일당도 챙기는 것이 발품 파는 것이다. 건강의 첫째는 행보(行補), 다음이 식보, 그 다음이 약보라 하지 않는가.

뛰고 움직여서 흘리는 건강한 땀내가 20여개 테니스 구장에 가득하다. 건강한 다리가 의사라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다리 근육들이 보기에도 아름답다. 시대가 바뀌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도 건강한육신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다. 세계 최고수가 천대의 인공지능에 무너졌다. 프로그램으로 만든 슬랏머신을이기는 것도 어렵다. 말하자면 불도 저 앞에서 삽질하기 식이다. 맘과 달리 쉽게 나가떨어지는 나약한 모습에 부아가 난다. 감정도 없고 지칠 줄도 모르는 알파고의 실수를 은근히 기대해 보지만 빈틈이 없다. 테니스 코트에도 알파고의 모습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오감을 즐기며 쳐대는 그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밤의 유혹에 날 새는 줄 모른다. 라스베가스에 올 때마다 어쩌면 그 옛적 소돔과 고모라성에 가까운 곳은 아닐까 여긴다. 돈 놓고 돈잃는 도박도 자유이고 섹스도 사고판다. 이제 마리화나도 자유롭게사고 피우며 즐길 수 있는 환락의 도시가 될 거란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선을 앞두고도오기로 머신과 밤새 싸웠다고들 한다. 난센스와 유혹에 너무 쉽게 빠져든다.

자연스러워야 멋지고 아름답다.

나는 새는 과식을 하지 않는다. 잃고도 행복하면 좋다. 혼자서는 다못한다. 선수들의 자연스런 팀웍에박수가 터진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은 발걸음도 가볍다. 칠십대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테니스 코트에 소박한 미소가 흐른다. 승부욕을 내려놓으니 그들 속에 행복이 보인다.

<강신용 CPA·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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