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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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맑아진다고?

2016-05-03 (화) 김용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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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건강식품 또는 약물광고에서 보는 피를 맑게 한다는 주장은 피가 깨끗하지 않거나 오염 되있다는 전제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말이 없으나 보는 사람은 이유를 모르면서도 막연하게 맑아진다는 말이 좋게 들리기 마련이다. 이와는 좀 다르지만 피가 너무 많아서, 피가 흐리지 않고 고여서, 또는 피와 인체내 다른 액체와의 균형이 안 맞아서 병이 생긴다며 피를 흘러 내보내는 blood letting이란 치료법이 3,000여년 전 이집트에서부터 서양의학의 개척자라는 희랍의 히포크라테스를 통해 19세기 말까지 쓰여왔는데 그 후 현대의학에선 엉뚱한 짓으로 사라졌지만 이 치료법을 지금 믿고 쓰고 있는 어느 한국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가 맑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피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피는 혈청(plasma)이란 액체와 혈구(적혈구, 백혈구)로 구성돼 있는데 심장에서 출발해 온몸 구석구석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 및 모든 인체기능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실어다주고 거기서 나오는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신장과 폐로 실어 보내는 역할은 한다. 적혈구는 산소를 나르고 백혈구는 병균과 상한 세포와 조직을 제거하고 면역을 제공한다. 혈청 안에는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담겨있고 여러 가지 전해물과 호르몬 그리고 피의 응고에 필요한 피브리노젠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몸 생존과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고 이 중에 어느 것이든 너무 많거나 적으면 이상 즉 병적인 상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필수품이 아닌 오염물질은 어떤 것 있을가.

피 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적혈구는 120일 동안 산소를 공급하는 임무를 마치고 분해가 되어 빌리루빈이란 폐쇄물이 돼서 쓸개를 통해 장으로 들어가 변을 갈색으로 만들어 제거되고 일부는 소변의 노란색으로 제거되는데 간염, 간경화 등 질환에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피에 많이 남아돌며 황달을 일으킨다.

백혈구가 비정상상태로 크게 번식하면 혈액암인 백혈병이 된다.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들이 에너지를 발생하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폐로 가서 개스로 나오고 단백질의 질소가 담긴 노폐물은 신장에 가서 소변으로 나오는데 만성신부전 같은 신장병에서는 제거가 부진해 피 안에 많이 남아 돌면서 몸에 해를 입힌다. 몸에 들어온 모든 약물, 알콜은 물론 납이나 수은 같은 해로운 금속물도 피에 담겨 돌면서 간에서 일부는 분해 처리된다. 이런 노폐물을 갖고 피가 맑지 않은 원인이라 여길 수 있으나 모든 경우에서 그 수치가 비정상으로 높을 때 정확한 원인이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 즉 치료도 있는 것이다. 막연하게 피를 맑게 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없애주는 만병통치란 터무니 없는 말에 불과하고 그런 막연한 광고에 귀가 솔깃해지면 우선 주치의나 전문의에게 문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용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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