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때를 안다는 것

2016-04-23 (토) 01:20:57 양태환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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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달래, 개나리 핀다고 지들까지 나와서 얼어 죽었네. 오~메! 아까워라. 올해 철쭉은 버려버렸구먼!”잠깐 집에 들른 형수가 마당 한 쪽에서 장탄식이다. 일찍 꽃망울을 틔웠다가 지난 주 갑자기 영하의 기온에 그만 동사한 철쭉 봉우리를 보면서 말이다.

4월 중순이라야 꽃을 피우는 철쭉이 올해는 유난히 포근한 날씨에 초순부터 꽃 봉우리가 맺혔다. 그러다 갑자기 눈까지 오는 꽃샘추위에 꽂눈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렇잖아도 못내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눈 예보가 있던 지난 주, 비닐이라도 덮어줬더라면 화사한 꽃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 테 하는 게으른 후회도 소용없었다. 형수의 질펀한 한탄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때(時)를 알고 내리는 반가운 비.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첫 구절이다. 때를 안다는 것은 자연에게나 인간에게나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랑도 때가 중요하다. ‘버스커 버스커’의 ‘사랑은 타이밍’이란 노래도 “내가 있어야 할 순간에 내가 있었더라면”하고 때늦은 후회를 노래한다. 사과에 있어서도 때는 중요한 요소다.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 연예인은 거짓과 변명으로 때를 놓친 후 ‘국민 밉상’이 된 지 오래다. 그 후로는 아직까지 그를 TV에서 보지 못했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라는 시구절도 있다..

주식 시장에서도 때만 알면 워렌 버핏이 될 수 있다.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팔면 되니 이처럼 돈벌기 쉬운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인간은 뉘우침과 죄의식이라는 실존의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만 무한한 자기 체념을 할 수 있고 그제 서야 비로소 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맡긴다는 내용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척 했다. 하지만 다시 읽은 ‘파우스트’는 난공불락이었다. 아직 ‘파우스트’를 이해할 때는 아닌가 보다.

때를 안다는 것, 아마도 인생을 안다는 또 다른 말일 것이다. 그것은 오후 7시45분의 어스무레함과 7 55분의 어둑어둑함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테니 말이다.

<양태환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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