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아도 무시당해도 표현은 못하고…’
대부분 증세 방치 극단행동 위험 높아
#50대 직장 여성인 제니 최(가명)씨는 얼마 전 남편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하나 뿐인 딸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뒤 1년이나 우울증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딸을 대학에 보내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등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최씨에게는 남편이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최씨는 “남편이 2년 전부터 사업이 잘 안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는데 애지중지하던 딸까지 떠나고 나니 더욱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 문제로 조지아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6개월째 살고 있는 40대 직장인 김진석씨는 최근 탈모 증상이 곳곳에 생겼다. 가족이 없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자주 술을 마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씨는 “우울증은 흔히 여성들이 겪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 같은 기러기 아빠들도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며 자신이 우울증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최근들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인 남성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한인 중ㆍ장년층 남성들이 겪는 우울증 문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울증은 흔히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앓는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우울증을 진단 받는 비율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 더 높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울증 진단의 ‘성별 차이’는 실제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남성도 여성과 비슷한 비율로 우울증에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성들이 주로 겪는 유사 우울증 증상을 포함하면 남녀 간의 성별차이가 별반 다르지 않다. 유사 증상은 격한 분노, 위험감수, 약물 남용, 일중독 등으로 일상생활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에서 4배가량 높다고 조사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 남성 우울증 환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침묵’을 꼽는다.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장년 남성 우울증 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괴롭고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라며 혼자 극복하려고 전전긍긍하다 자살 등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우를 범하고 사례가 많다.
한인가정 상담기관 관계자들은 “한인 중장년 남성은 부모와 자녀를 돌보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지만 해소할 능력은 떨어진다”며 “남성이 경제적인 상실감을 겪게 된 후 감정적 고통을 표현하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이 극심해질 때까지 방치하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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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