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분과 실리의 황금률

2016-03-17 (목) 11: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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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결정을 해야 될 때가 많다. 이렇게 해야 할까, 저렇게 해야 할까, 어느 길이 좋은지 지혜를 모아서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명분(命分)과 실리(實利)가 교차되고 있을 때엔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아주 난감해진다. 이런 경우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명분을 택할 때엔 자존심과 체면과 명예와 관계가 되고 실리를 택할 때엔 자존심을 꺾어야 하고 체면을 구겨야 하고 명예를 손상시켜야 하는 관계가 성립된다. 실리를 택하지 않고 명분을 택하면 손익분기점에서도 크게 손해를 볼 수가 있다. 손해란 당연히 물리적이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는 장점이 생긴다.


기원전 2세기경에 중국 한나라에 유방의 부하이자 개국공신인 한신 장군이 있었다. 한초삼걸 중의 한 사람이며 명장인 한신이 한 때 부랑배의 가랑이를 기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어떻게 장군이 한갓 동네 부랑배들의 가랑이를 타고 기어 살아야 하나. 그러나 한신은 이 때, 자존심과 명예를 뒷전에 남겨 두고 가랑이를 기었다.

그리고 그는 살았다. 살기 위해선 명분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 아니다. 그러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각오한 경우는 많다. 옛적 우리네 조상들 중 양반들은 양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굶어 죽어도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 했다. 양반이란 가문의 명예에 욕을 입히지 않으려 한 거다.

명분과 실리 중 가장 이로운 쪽으로 가져가는 게 명분과 실리 사이의 황금률 적용이다.

황금률을 잘 따지고 지키면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기는 일거양득이 되고 임도 보고 뽕도 따게 된다.

그렇지만 어디 그런 황금률을 적용하기가 그리 쉬운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황금률은 반드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찾기가 어려울 뿐이다.

요즘 한국의 정치상황 돌아가는 걸 보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명분과 실리 사이의 황금률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와의 기 싸움 같은 명분과 실리 다툼은 가관이다.

일본 바둑프로들의 바둑 두는 경향에서 그들은 실리보다는 명분을 먼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가끔 본다. 그리고 조화와 예술적 가치를 바둑에도 적용시킴을 본다. 인류를 대표한 이세돌의 바둑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밀린 것은 이세돌의 바둑이 명분과 실리의 황금률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불교의 중도(中道), 유교의 중용(中庸)은 어느 한쪽에 편향, 편중하지 않는 정도와 적중을 뜻한다. 이는 우리네 일상사와도 끊을 수 없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명분과 실리의 황금률 적용을 적절하게 잘하는 사람은 성공의 지름길을 달릴 수 있다.

임도 보고 뽕도 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두가 다 좋은 황금률은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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