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만 한 호박들이 싱싱한 줄기에 매달린 채 모두 썩었다
다 익을 때까지 엉덩이를 자주 돌려주어야 하는 걸 몰랐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한곳만 질기게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는 쪽이 무조건 앞이라 우기는 습성도
한 번도 엉덩이를 돌려보지 않은 탓이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 내가 가꾼 호박 농사를 망친 이유다
자주 엉덩이를 뗐다 붙였다
앞도 보고 뒤도 보는 자가 출세도 잘한다
새들도 구애를 할 때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빙빙 돈다
배꼽을 드러내고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드는 벨리댄스도
천박함을 벗어나 세계적인 춤으로 박수를 받는다
인간의 엉덩이가 뒤쪽에 붙어서 크고 무겁게 진화해온 것은
죽어라 앞으로만 걷는 인간의 습성 때문이다
제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고 중력을 잘 견디려면
자주 엉덩이를 돌려야 한다
골고루 잘 영그는 힘은 엉덩이를 움직일 때 생긴다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엉덩이가 홀쭉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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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호박들이 싱싱한 줄기에 달린 채썩어있는 것을 보며 시인이 떠올리는
‘엉덩이 움직이기’란 생명철학이 재미있다.
침묵처럼 고여 있는 물, 어떤 풍파에도 끄덕하지 않는 바위, 그 고집과 저력도 듬직
하고 믿을만하지만 그렇게 꼼짝 않다가 저 호박들처럼 썩어버려 농사를 망치면
무엇이란 말인가.
엉덩이를 돌려줘야 중력을 이긴다. 싱싱한 꿈을 향해, 따스하고 거친 욕망들을 향해 마음껏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잘 사는 것이고 잘 늙는 것이라니, 정말 그렇겠구나 싶다.
임혜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