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수저’들만의 리그 한국영화판… 영비법 개정 시급

2016-02-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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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입법 청원안 국회 제출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시민단체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입법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매년 대형 히트작이 나올 때마다 문제로 지적됐는데 올해는 설 연휴 개봉작 ‘검사외전’이 단초가 됐다.

지난달 전년대비 25%나 영화 관객이 줄어 매출회복이 시급했던 극장은 이 영화에 상영관과 상영횟수를 지나칠 정도로 몰아줬고, 결국 개봉 열이틀째에 800만 관객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쿵푸팬더3’ 예매관객에게 예약취소를 청하고 대신 ‘검사외전’을 상영한 사실이 알려져 관객들의 비난을 샀다. “스크린 수가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이건 미친 짓”이라는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검사외전’ 상영시간표를 보여주며 “마치 전철 시간표 같다”고 비웃기도 했다.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 투자·배급사만 겨냥한 지적이 대부분이었으나 이번에 CJ CGV가 계열사인 CJ E&M의 배급작 ‘쿵푸팬더3’을 빼고 경쟁사인 쇼박스 배급작인 ‘검사외전’에 상영관을 내줌으로써 결국 영화계 갑은 극장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대기업인 투자배급사가 극장까지 소유하고 있는 구조다.


지난 12년 간 설 연휴로 기간을 한정해 영화시장분석가 김형호씨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0개관 중 3.3개관(스크린 점유율)에서 ‘검사외전’이 상영됐다.

상영횟수 점유율은 더 높다. 10회 중 5.2회다. 설 다음날인 9일을 기준으로 매출액 점유율 0.1% 이상인 영화는 총 17편이었다. 극장이 ‘검사외전’을 1회 걸고, 나머지 1회로 16개 영화를 번갈아 상영한 셈이다.

설 연휴 박스오피스 톱5 영화를 비교하면, ‘검사외전’은 5회 전회 상영을 보장받았다. ‘쿵푸팬더3’ 4.2회, ‘앨빈과 슈퍼밴드’ 2.1회, ‘캐롤’ 2.3회, ‘로봇, 소리’는 2.5회를 보장받았다 ‘검사외전’의 스크린 점유율은 기존의 최고작인 2005년 설영화 ‘투사부일체’(23.6%)보다 1.4배 높고 상영 횟수 점유율은 기존 최고인 2013년 설영화 ‘7번방의 선물’(26.6%)보다 1.9배 높았다. ‘투사부일체’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으나 ‘7번방의 선물’은 극장 체인이 없는 NEW 배급작이었다.

극장이 특정영화의 상영횟수를 많이 보장하면 당연히 관객은 증가한다. 지난 5년 간 전체상영작의 실적이 이를 입증한다. 관객 수는 스크린 수 및 상영 횟수와 인과관계를 보였다. 스크린보다는 상영횟수가 더 인과관계가 높았다. ‘검사외전’의 흥행성적을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검사외전’은 회당 106명이 봤다.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평균 106명의 관객을 모았는데, 이는 역대 설 영화 1위작 평균인 117명보다 적다. 역대 설 영화보다 더 많은 상영 횟수를 확보했으나 평균 관객수는 역대 7위에 불과했다. 극장이 묻지마식 안일한 몰아주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번 주 개봉한 ‘동주’는 첫날인 17일 스크린당 상영 횟수가 2.9회였는데 18일 2.8회, 19일에는 2.6회까지 감소했다. 절대적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주말 황금시간대인 오후 1시부터 7시대 상영도 줄었다. 좌석점유율은 14%→24%→44%로 증가하며 좌석점유율 3위에 랭크됐다. 관객들이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해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러가고 있다는 의미다. ‘동주’는 좌석점유율이 높은데도 ‘데드풀’이나 ‘좋아해줘’ ‘검사외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테러 아티스트’로 칭송받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는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가장 어리석고 불공정한 경주를 하는 경기장과도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경기에 필요한 제대로 된 운동화와 마실 물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흙수저’들이 ‘금수저’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인데, 영화판에도 이 룰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국내외 독립영화부터 저예산영화, 대작영화가 뒤섞여 같은 경기장에서 매주 순위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선수도 체급을 나눠 경기를 하는데, 영화판에는 그런 보호장치조차 없다.


더 이상 보호장치 마련을 미룰 수 없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영화는 점점 다양성과 실험성을 잃고 있다. 관객이 좋아할 상업영화만 나오고 있다. 몇 년째 국제영화제 진출 소식이 없는 것이 방증이다.

한국경제의 화두 중 하나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상업영화 위주로 돌아가더라도 다양한 영화와 공존해야 산업이 더 탄탄해진다. 게다가 영화는 공산품이 아닌 대중문화상품이다. 크게는 상영업과 배급업 겸영 분리부터 작게는 개봉작에 대한 최소한의 상영횟수 보장까지, 관객수만 늘어날뿐 다양성은 죽어가고 있는 한국 영화판을 위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영화관의 스크린 독점을 방지하고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해소하고 ▲저예산 영화 및 전용상영관 지원을 확대하며 ▲영화관의 불공정 행위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 골자인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입법청원안이 국회에서 의미있게 논의돼 통과되길 바라는 이유다.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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