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빨래집게

2016-02-25 (목) 11: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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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블라이 (1929- ) ‘빨래집게’

▶ 임혜신 옮김

빨래집게를 만들며
한 생을 보내고 싶다.
내가 가진 땅위에 자라는,
아마도 소나무들을 조금
다치게 할 뿐
다른 아무것도 해치지 않는,
나무는 다시 심을 거고
시월의 호숫가에서
빨래 줄에 걸린 나의 작품들을
바라볼 것이다.
열 두 개쯤의 빨래집게, 숲은
아직 신선하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는
저 북쪽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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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아주 조그만 기쁨을 아는 이에게 행복이라는 신비의길을 열어준다. 그런데 현대인은 그 신비를 잃어간다. 거대화, 획일화 속에서 뿌리를 잃고 흔들리고만 있다. 스스로 만든 빨래집게에 옷을 말리며 자연 속에 살아가고 싶은 시인의 소망도 잃어버린 작은 행복에의 그리움이다. 빨래집게를만들며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감자를 자르는 기쁨을 노래한 라비아의 시가 생각난다. 작고 착한 삶을 찾아나서는 아침이다.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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