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을 서울 교육청이 관할 고등학교에 배포했다고 한다. 그 사전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해서 4,776명이 친일인사로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친일인사로 규정한 기준과 과연 친일 행위가 현재의 대한민국의 법 정신으로 볼 때 지탄 받아야 할 행위인가이다. 노무현 정부 때 ‘친일 진상규명법’을 제정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용두사미 격으로 끝났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으로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36년 동안, 또는 그 이전, 실제로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1895년부터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을 색출하여 직접적인 형사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이들의 후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행위일 것이다. 후손이 정치인이고 망신을 주고자 하는 이가 정적일 경우 더더욱 그렇게 악용될 여지가 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반민족 특별위원회(반특위)를 설립하여 친일 인사를 처벌코자 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대부분의 유명인사가 친일 혐의에서 자유스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재의 대부분은 일제에 충성한 공무원이었다는 현실이 반특위법이 가동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이승만 정부는 일정 때의 사법부 요원과 검찰, 경찰 공무원 등을 대한민국 정부에 기용했다. 이와 반대로 북한의 김일성은 친일 인사를 모두 처형하고 노동자와 농민 중에서 일꾼을 등용해서 정부를 운영했다. 어느 쪽이 잘 했는지는 오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친일인사를 지목하자면 거의 모두가 친일 인사다. 일본이름으로 창씨 개명한 자체만 봐도 친일 행위다.
그때에 창씨개명은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총독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 권고에 굴하지 않고 창씨에 응하지 않은 사람도 간혹 있었다. 대부분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했고 일본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 이전으로 올라가서 구한말에 고종황제는 머리를 삭발하고 일본 천황이 하사한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백성 앞에 나타나서 일본식으로 삭발할 것을 명했다. 많은 유학자들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가 있었다. 이 몇몇 사람의 후손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친일 인사라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일제기간 중에 태어나서 일제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일본사람이라는 정신으로 살아온 엘리트 중에는 일본국의 판·검사, 정치인, 교육자, 군 장교 등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까지도 친일인사로 규정하려고 한다. 이들에게는 일본국 이외에 충성해야할 다른 나라가 없었던 시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한일합방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을 옹호할 의사는 없지만, 그 당시에 더 큰 죄인은 무능한 황실이라고 단언한다. 친일 인사들이 범법을 했다 하더라도 이를 논하기에는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국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참상에 대한 책임은 정치인만이 져야한다.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이 무능해서 야기된 비운에 대한 책임은 정치인만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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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