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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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오천항,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늑함… 보령 오천항의 겨울

2016-01-22 (금) 보령-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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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오천항,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늑함… 보령 오천항의 겨울

충청수영성의 영보정과 주변의 오천항 풍경.

충남의 천수만 뒤에 숨어있는 수줍은 항구가 있다. 안면도 원산도 등에 막혀 가뜩이나 고요한 바다인 천수만에서도 물길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오천항 이야기다.

주변의 산자락이 포근히 감싸 파도는 물론 바람까지 막아주는 아늑한 항구다. 그래서 이곳엔 방파제 등 피항시설도 없다. 수심도 깊은데다 안개도 다른 서해안의 항구 보다 덜 낀다고 한다.
보령 오천항,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늑함… 보령 오천항의 겨울

토정 이지함 묘역.

천혜의 입지 조건인 오천항은 삼국시대부터 중국과의 교역항 역할을 맡아왔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 었다. 조선시대 3대 수영중 하나인 충청수영성이 이곳에 자리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충청수영 산하에 군선이 142척, 수군이 8,4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천항에 충청수 영성이 축성된 건 1509년. 1896년 폐영될 때까지 서해안의 안보를 책임졌다. 당시 충청수영성에는 5개의 성문과 수십 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폐영된 이후 많이 무너져내려 서문의 홍예문과 일부 성벽, 진휼청 장교청 등의 건물만 남고 말았다.
보령 오천항,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늑함… 보령 오천항의 겨울

갈매못 성지.

충청수영성은 천수만 일대 해안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혀왔다. 특히 성의 중심에 있던 영보정은 다산 정약용, 읍취헌 박은 등을 비롯 수많은 문인들이 그 절경을 감탄하는 시문을 남기게 했다.

이 영보정이 최근에 복원돼 오천항을 굽어보고 있다.


수영성 한 구석엔 명나라 수군장인 계금장군을 기린 청덕비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3,000명의 수군을 이끌고 오천의 충청수영성에 도착했다가 남해로 나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대첩에 참여했던 명나라 장군이다. 중국에 있는 계금장군의 후손들이 최근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단다.
보령 오천항,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늑함… 보령 오천항의 겨울

도미부인 사당.

오천항에서 2.5㎞ 떨어진 곳에 갈매못성지가 있다. 마을 뒤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 같고 섬들로 둘러싸인 앞바다가 연못처럼 잔잔하다고 해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이곳의 모래사장은 충청수영의 병사들이 군사훈련을 했던 곳인데 그 곳에서 천주교 병인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희생됐다. 당시 순교의 길을 간 프랑스 성직자 세 분과 교회를 이끌던 두 분 등은 훗날 성인품에 오르게 됐다.

갈매못성지를 지나 보령화력발전소를 스쳐 바닷길을 달리면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를 만난다. 토정과 함께 그의 부모와 자손 등 14기의 묘가 한데 모여있다.‘ 토정비결’을 쓴 분이 직접 부모의 묏자리를 잡은 곳이라고 해서 풍수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명당의 기운을 받았는지 토정의 조카들은 영의정과 판서 등을 역임했다. 묘역의 윗자리에 올라 시선을 던진다. 섬들이 포근히 감싼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보령 오천항,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늑함… 보령 오천항의 겨울

충청수영성의 하나 남은 성문 서문.


충청수영성 인근엔 정절을 상징하는 도미부인의 설화가 내려져오고 있다.‘ 삼국사기’에 실린 도미부인이 이곳에 살았다는 것. 도미부인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섬 빙도(미인도), 도미 부부가 백제 개루왕으로부터 수난을 당하기 전까지 살았다는 포구 도미항 등이 전해진다. 부인이 남편을 사모한 것으로 전해지는 상사봉 자락엔 도미부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 정절사가 세워져 있다.

도미부인 사당과 이어진 산길을 따라 걷는 이들이 많다. 오천항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하는 도미부인 솔바람길이다. 한적한 이 길을 따라 2.3㎞ 걸으면 산머리에 설치된 우람한 해안경관전망대가 나타난다. 오천의 아름다움을 파노라마로 만끽할수 있는 공간이다.

동쪽으로 저 멀리 오서산이 웅장한 자태로 버티고 섰다. 오서산 밑으로 이어진 물길이 시선을 안내한다. 도미부인의 이야기가 어린 빙도를 지나 보령방조제를 지나면 영보정이 우뚝 솟은 충청수영성과 오천항이 어우러진 풍경과 맞닥뜨린다. 선착장에 밀집된 배들과 함께 주변 물에 뜨문 뜨문 떠 있는 어선들이 겨울의 날 선빛을 튕겨내고 있다.

풍경은 천수만과 안면도 주변의 섬들로 이어진다. 천혜의 오천항을 감싼 아늑한 풍경이다.

sungwon@hankookilbo.com

<보령-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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