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를 누비는 곤돌라
베네치아는 ‘바다 위를 부유하는도시’다. 떡갈나무 화석 위에 들어선섬과 회백색 건물은 짙은 로망으로연결된다. 운하, 광장, 삶터와 맞닿은 미로들 역시 기분 좋은 사색을 부추긴다.
이른 새벽, 창문을 열면 베네치아의 운하가 빚어낸 물안개는 방안까지 스며든다. 코끝을 감싸는 향기는 바닷가 도시의 골목을 스친 순화된 갯내음이다. 문밖으로는 수로가 이어지고, 여명 속을 배들이 고요히 가로지른다. 먼 길을 달려와 굳이 며칠씩 베네치아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욕망은 웅장한 산 마르코 광장이나 두깔레궁전의 영화로움이 전부는 아니다.
베네치아의 본 섬은 118개의 작은섬과 177개의 미로같은 운하로 이뤄져 있다. 400여개의 다리가 얽힌 섬안의 풍경들은 바깥 세상과는 단절의 의미가 깊다. 섬에서의 하룻밤은 도시가 간직한 몽환적인 새벽과 깊은 상념을 만들어낸다.
◆바이런, 괴테가 머물던 광장
베네치아의 환상은 물길들이 촉매가 된다. 줄무늬 셔츠에 모자를 쓴 곤돌리에가 칸초네를 부르며 직접 노를젓는 모습은 베네치아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200여년전만해도 1만여대의 곤돌라가 베네치아의 터줏대감이었지만 최근에는 400대의 곤돌라만 운행 중이다. 곤돌리에 면허증따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고 힘에 부친다는데 최근에는 여성 곤돌리에도 등장했으니 세상이 많이 변한 셈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걷든,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타든 누구나 예외없이 산 마르코 광장에 집결한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자,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로 격찬했던 광장이다. 이곳에는바이런, 괴테 등 예술가들이 단골로 방문했다는 카페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베네치아 공국의 위세를 보여주는 두깔레 궁전이나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달린 사자상 등을 알현하려는 외지인들로 광장 인근은 늘 구름인파다.
한 발자국 산마르코 광장을 벗어난 곳에서 베네치아는 더욱 빛을 발한다. 샤갈, 달리. 칸딘스키 등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중인 페기 구게하임 미술관은 익숙한 그림들로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이른 아침, 리알토 다리의 윤곽이 눈부시다면, 일몰즈음에는 두깔레 궁전 건너편의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풍광이 아름답다.
산마르코 광장
◆무지개빛 어촌마을 부라노섬
바다로 나서면 나무 말뚝이 만들어낸 뱃길은 인근 작은 섬들로 연결된다. 그중 부라노 섬은 파스텔톤의 골목과 어부들의 삶이 도드라진 곳이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베네치아의 회백색 건물과 달리 부라노의 집들은아늑하고 선명하다. 가옥에 정박해있는 집들은 배들과도 색을 맞추고있다. 자세히 보면 창문, 창틀, 문 손잡이의 조그만 놋쇠 장식은 물론 굴뚝의 모양까지 같은 게 없다.
섬 안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 등 바퀴 달린 것들은 거의 다니지않는다. 부라노를 유쾌하게 즐기는 방법은 아기자기한 전통 골목과 동화같은 집들에 취해 마음껏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부라노는 레이스 공예로도 명성 높은 섬이다. 19세기 후반 레이스 학교가 들어섰던 자리에는 레이스 박물관이 아직 남아 있다. 갈루피광장의 산 마르티노 성당은 아슬아슬게 기울어 있어 묘미를 더한다.
어느 골목을 거닐던 미로 같은 길들은 상념으로 이어진다.
지중해를 호령하며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렸던 도시의 뒷골목들은 어촌마을의 속살을 담은 채 여행자들의지친 어깨를 보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