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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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FDA 운운하는 광고

2015-12-08 (화) 김 용 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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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힘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클 수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효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특히 그것이 건강에 관련된 것일 경우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잘 아는 교육도 제대로 받은 한 부인이 만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기막힌 약품이란 것을 어느 조직망을 통해 선전하고 판매하고 다니는데 남편의 좋지 않은 건강이 이것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고 노벨상 수상자가 이 약품 발명에 관련되어 있어 의사인 나도 설득이 될 것이라며 관련책자와 CD를 주며 꼭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기 나오는 두 노벨 수상자는 수십 년 전의 기초과학 연구자들로 그들의 연구는 이 제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분들이 지금 살아서 이 광고를 본다면 필경 질겁할 것이다.


일 년 이상 이 약품을 복용하고 있다는 60대 중반인 그 부인 남편의 증상을 들어보니 심근경색증이 의심돼 심장검사를 받도록 설득해 검사를 받아본 결과 심장마비가 눈앞에 닥친 급한 상태로 곧 입원해 심장동맥 이식수술을 받아 몇 년 후인 지금도 살아 있고 그 부인은 그 약품 판매망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이 부인과 함께 여러 부인들이 이 약품을 팔고 다닌다는데 위에 말한 두 노벨 수상자를 선전의 핵심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과학계 노벨상은 주로 기초과학 연구에 주어지는 것으로 그런 것이 긴 세월이 지난 후 산업분야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수상자를 상품광고에 써먹는 것은 억지고 일종의 사기로 볼 수 있다.

요즘 현 일본 왕세자 내외가 아이를 갖게 했다는 약품이라며 그 내외와 아이의 사진까지 실은 광고를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유사한 선전술로 일본 황실이 알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FDA 승인이란 말도 광고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제품의 효력성과 안전성이 공식 증명되었다는 뜻의 효과를 보려는 셈일 것이다.

미국 정부의 FDA(식약청)은 까다롭기로 유명해 제약회사가 새 약품을 승인받는 데는 수년에 걸친 연구와 엄청 큰돈이 들어 웬만해선 엄두도 못 내고 그렇게 어렵게 승인을 받아 시판이 되는 약품의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나오는 것이 그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선 승인돼 쓰이고 있는 제품도 FDA는 인정 안 하고 미국 내 새 개발품과 똑같은 승인절차를 요구해 외국에서 검증된 좋은 약을 미국에서는 승인될 때까지 오래 못 쓰고 있는 것을 미국 의사들이 안타까워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어려운 승인절차를 밟은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미국회사들이 FDA 소리를 광고에 쓰지 않는 것은 그들의 유명세와 명예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서 의사들은 알지도 못하는 무명회사의 제품에 FDA 승인을 운운하는 것은 우선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다. FDA 승인이 실제로 난 다른 제품과 억지로 연결을 걸 무슨 고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광고하는 제품에 대한 승인은 아닌 것이다.

이밖에도 그럴 듯한 전문용어로 눈길을 끌어 광고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레이저, MRI, DNA, 보톡스, 항암, 항산화, 면역, 오메가 3, 루틴 등등 여기저기 마구 쓰이고 있는 용어들에 현혹되지 않고 전문의를 통해 진위를 밝혀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 용 제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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