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이 굵고 대륙적인 기질 특색
▶ 김숙자류 미주 무용가 첫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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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임 (무용평론가· 미주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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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류 도살풀이를 추는 이영남.
이영남의 춤발표회 ‘류별로 본 우리의 춤 시리즈 1’가 지난 10월23일 LA한국문화원 아리홀에서 있었다.
한국전통무용의 여러 갈래들을 꾸준히 연마해온 이영남이 그간 여러 스승들에게 사사한 작품들을 한 무대에 올린 기획전으로 이날 공연에는 강선영, 김수악, 이매방, 김숙자 등 한국전통춤의 대표적 작품들이 선별되어 올려졌다.
전통춤은 추는 이에 따라 그 맛과 멋이 다르게 나타난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춤의 정통성을 지켜감과 동시에 그 춤을 연기하는 춤꾼의 성향은 또한 춤의 창작성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춤, 거기에다 춤꾼은 또한 스승의 정신까지 담아내어 춤을 추어야 한다. 원형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기능성과 자신의 춤으로 표현해야 하는 예능성의 조화, 그래서 우리 전통춤의 미학은 참으로 그 정의 작업이 모호하기만 하다. 전통춤에 존재하는 ‘류파’라는 개념은 그 춤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다분히 학문적인 용어이다.
이번 공연에서 이영남은 김숙자류의 6박 도살풀이춤을 추었다. 섬세하고 여성적인 4박 살풀이보다 힘이 있고 신명성이 강한 도살풀이 6박에 도전한 것이다. 목과 손끝의 노는 놀림이 남다르고 멋스러우며 긴 수건을 함께 풀어 제쳐야 하는 춤이기에 더욱 큰 몸짓의 기교를 요하는 이 춤에 매료된 이후, 이영남은 미주 무용가로서는 유일하게 6박을 처음 시도했다. 선이 굵고 대륙적 기질을 특색으로 하는 도살풀이춤에 자신의 몸을 실어보고 싶은 춤꾼의 욕망이 이영남의 열정으로 이어진 것은 미주 무용계에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서의 지정명칭은 두 춤 다 살풀이춤이지만, 도살풀이춤은 살풀이춤과 확연히 다르다. 살풀이춤이 4박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추는 호남의 춤이라면, 도살풀이춤은 6박의 도살풀이장단에 추는 경기도 지방의 춤이다. 두 춤 다 수건을 사용하지만 도살풀이는 살풀이에 비해 두배 가까이 긴 수건을 휘감아야 하기에 더욱 기교가 요구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명주 수건자락에 인생의 한을 담아내어 추는 춤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하지만 도살풀이는 경기 지방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도당굿에서 기원한 춤이라 훨씬 더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짙다.
원류 김숙자는 1990년 무형문화재 97호로 지정된 이후 이 춤의 후계자를 지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숙자 사망 이후 저마다 자신이 스승의 혼을 담은 춤이라고 주장하며 4박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종목의 문화재 지정에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류 김숙자의 춤과 오늘날 그의 제자들의 춤의 정통성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는 전문가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영남은 김숙자류 도살풀이를 김숙자의 여러 제자 중 6박 도살풀이를 고집했던 이정희에게 사사했고 미국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열정으로 6박의 흔적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 춤을 연구, 연마한지 8년만에 처음으로 이번 무대에 올렸다.
한국 전통춤의 특성을 류파별로 연구해온 그의 류파별 공연 시리즈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영남은 이제 시리즈 2를 준비하기 위해 또 다른 춤의 여정을 떠나려 한다. 춤꾼들은 대부분 문화재가 되기 위해 춤을 춘다. 그러나 이영남은 춤을 캐기 위해 춤을 춘다. 그의 다음 춤무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