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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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의 아프리카여행기(7)

2015-09-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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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동물 위험” 아침 등굣길은 어른이 동행

권태진의 아프리카여행기(7)

마사이족 추장, 부추장과 함께

필자가 “유럽의 식민지 정책 때문에 아프리카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이 아프리카 발전에 악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니콜라스 의견은 달리 도리어 발전했다고 한다. 그는 “교육, 성경, 문화가 아프리카를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성경이 아프리카의 발전에 도움을 준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니콜라스의 봉급은 미화로 월 $150, 케냐 수준으로는 비교적 괜찮은 봉급이지만 한 달 봉급이 이곳 관광객 하루 숙박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드 므왕기(Olde Mwangi)마사이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빈도와 나는 오후 3시에 호텔을를 나섰다. 마사이 동내까지 가는데 는 자동차로 35분 거리다. 마을이 공원에서 가까운 거리라 가고 오는 길에 들판을 다시 헤매기로 했다. 1차. 2차 게임에서 보지 못한 사자와 표범을 볼 수 있을까? 가는 도중에는 숲이 있고 야산도 있어 사자가 나올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보이는 동물은 기린뿐이었다. 1시간 이상이 지나 도착한 마을은 입구에 몇 그루의 큰 나무만 푸르게 서있는 황량한 들판에 있었다. 6월이 초겨울이지만 아열대 지방이라 나무 잎은 푸르지만 풀들은 누렇게 변하여 있었다. 마을 들어가는 입구와 둘레에 가시나무 울타리가 쳐있다.

주로 아카시아나무 등 가시가 있는 나무와 덤불로 울타리를 하는데 이것은 야생동물의 습격으로 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1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뛰어 나왔다. 맨발에다 온 몸이 먼지투성이다.

책임자가 나올 때를 기다리며 마을 밖에서 기다리니 키가 훌쭉한 두 명의 마사이 젊은이가 마을 밖에 나와 나를 맞았다. 이들이 추장 Oirisng Pgrtimo와 부추장은 Jacob Nkomom 모두가 30대의 젊은 나이다. 빈도는 나를 그들에게 소개하고 내가 마을로 들어가는 동안 마을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마사이 사회는 나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추장과 부추장이라 하여 어떻게 선출되느냐고 물었더니 직접선거로 선출된다고 한다. 마사이 마을은 대부분이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그것은 방문하는데 약간의 돈을 내야하고 또 방문객들에게 그들이 만든 물건을 팔기 때문이다.

마을을 방문하려 왔다고 하니 추장과 부추장은 먼저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 손을 잡는다. 무슨 기도냐 했더니 방문객이 오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라고 한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했다. 그들 두 사람의 손에 양손을 잡힌 채 눈을 감고 기도소리를 들었지만 토착민 언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으니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물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기도 후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벌써 10여명 이상의 여자들이 일렬로 서 있다.

남자들은 일하러 나가고 없다. 소위 환영식이라고 하면서 노래와 춤을 춘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춤과 노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에게 함께 춤을 추라고 권하여 얼결 곁에 어울려 한바탕 운동을 했다. 추장이 나에게 건네준 그들의 전통의상을 두르고 마을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성인이 60여명, 아이들 포함해서 15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이 이들이 사는 집이다. 지금은 정착이 되어있지만 원래 유목민이라 집도 영구적이 아니다.


마사이의 집 건축방식은 마른 나무를 둥글게 바닥에 박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나무 가지나 풀들을 끼워 공간을 채운 다음 지붕을 얹는다. 그리고 진흙과 소똥 등을 석어 반죽을 만들어 집 외부를 바른다. 지붕은 소똥으로 바르는데 그것은 비가 올 때 방수가 되기 때문이다. 집의 크기는 가로 3m 세로 5m에 높이는 1.5m 정도다.

이 협소한 집안에서 음식을 만들고, 먹고, 자고, 친교하고, 음식과 연로와 기타 살림도구를 저장한다. 올드므왕기 마을의 집들도 이와 유사한 전통적인 마사이 집이다. 모든 집이 흙담으로 같은 모양으로 지어져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이다.

어느 집 안으로 안내되었다. 집 전체가 20평방미터 규모의 협소한 집에 부부방과 아이들 방 하나 외에 약간의 공간이 있다. 불을 피우는 곳이 있는데 그것이 부엌이다. 나무로 불을 지피면 연기는 벽에 구멍이 있어 그곳을 통하여 나간다.

집이라고 하기 보다는 모두 합해서 큰 방 하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다. 물론 전기나 솔라에너지 시설이 없다. 모든 마사이 사람들이 이와 같은 환경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개량된 주택과 문화적인 혜택을 다소 받고 사는 부락도 있다.

소변을 보려고 변소를 찾았다. 변소는 집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공동변소가 있었다. 변소는 나무판자로 지어졌으며 변을 보는 곳은 뚜껑이 없어도 냄새도 나지 않고 비교적 깨끗하다. 문이 둘 있어 남자.여자용이 따로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예상밖의 대답이다.

여자들은 변소를 사용하지 않고 들에 나가서 변을 본다고 했다. 여자들은 부끄러워 남자와 같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리어 남자들이 들을 사용해야 되지 않을까? 여자들을 경하게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시간이 있으면 그들이 만든 수예품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수예품을 보겠다고 하니 순식간에 노천 시장이 이룩되었다. 집 뒤 넓은 공간에 20여명의 여인들이 각자의 수예품을 가지고 판을 벌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먼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볼품없는 수예품이지만 $10을 주고 구슬반지를 샀다. 그랬더니 추장이 자기 부인자리로 데려갔다. 자기 부인 것을 하나 팔아달라고 한다.

짐이 되지 않은 조그마한 것을 골랐다. 옆에 있던 부추장이 자기 부인 것도 팔아달라고 해서 사고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자기 둘째 부인이란다. 또 샀다. 인디안 마을이나 중남미 원주민 마을에서는 3, 4달러면 구입할 수 있는 것을 아프리카에서 10달러씩이나 주었으니 바가지도 큰 바가지다. 물론 흥정을 하면 훨씬 싸게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건보다 후원이 목적이니 가격 흥정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건물이 있는데 이것을 학교라고 했다. 2살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아동들을 맡아 보호하는 곳이다. 집과는 다르게 벽은 나무들로 역어 만들어 졌으나 그 사이는 공간이 보이고 흙도 바르지도 않아 통풍이 잘되게 되어있다.

책상은 나무판으로 되어있고 의자는 역시 나무 판으로 긴 벤치다. 여자 선생이 몇 명 되지 않는 아이들과 있었다. 함께 사진도 찍고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하니 아이들이 신기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 귀엽기만 하다.

저 멀리서 머리에 무언가 머리에 이고 오는 여자들이 들판에 나타났다. 2km 떨어진 호수에 가서 물을 길러오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우물이 없느냐고 나의 물음에 부 추장은 우물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지금도 이들의 우물을 파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내 마음속을 맴돌고 있다. 탄자니아서 만난 우물을 파는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선교사에 의하면 미화로 약 $14,000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도울 수 있으면 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tjkkwon@hotmail.com으로 연락바랍니다.)

반대편 벌판에서 한 여자가 큰 가축 떼를 몰고 동내로 들어오고 있다. 저녁이 가까워 오매 소와 염소 때를 동내로 몰고 오고 있는 장면이다. 더 지체하지 않고 마을을 떠나려고 하는데 멀리서 두 아이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에 갔다가 오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오는 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라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건넸지만 피곤한지 무표정이다. 아침에 5km 정도 떨어진 학교에 갈 때는 어른이 한사람 동행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위험한 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자, 표범, 코끼리가 대표적인 위험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녁때쯤에는 동물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어른 동행 없이 아이들만 귀가한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오면서도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혹시 보지 않았던 사자나 표범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해가 저 멀리 지평선에 머물고 우리는 혹시 하는 생각으로 중간 중간에 차를 세우고 노을에 깔린 먼 벌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고자 하는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호텔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나는 “내일 아침 우리는 떠난다. 우리가 공원을 떠날 때 사자가 나에게 인사를 하러올 것이다”하고 능청을 부렸더니 빈도는 소리 내어 웃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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