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혼의 언덕에서 하나님 향해 부르는 고백송

2015-07-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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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한국 가요계 이끈 유명그룹 출신

황혼의 언덕에서 하나님 향해 부르는 고백송

한웅 집사가 가족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한웅 집사, 일흔 넘은 나이에 찬양CD 내다

인생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평균 수명이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누구에게도 없다. 힘 있을 때 나누고 보일 때 읽고 목소리 나올 때 찬양하는 게 낫다. 한웅 집사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새삼스럽게 찬양 CD를 낸 이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신앙의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그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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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사는 1960년대 가요계를 휩쓴 그룹 ‘히 식스’의 전신 ‘히 파이브’를 이끌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 손 꼽히는 김홍탁이 리드기타를 맡았고 TBC의 간판 쇼 프로그램인 ‘쇼쇼쇼’에 단골로 출연했다.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하다 대학교 2학년 때 비틀즈를 보고 ‘포 가이스’라는 그룹을 만들어 8군 무대에서 데뷔한 게 대중음악 인생의 시작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입에선 신중현, 윤항기, 차중락, 김시스터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의 이름이 술술 이어졌다.

이제 고희를 넘어선 그가 남은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했다. 찬양집의 제목은 ‘존귀한 그 이름’이다. 굽이굽이 돌아 인생길을 뒤돌아보니 ‘높고 위대한 하나님’이 늘 함께 걸어왔더라는 것이다.

“후배가 CD를 들어보더니 ‘무겁다’고 하더군요. 당연하죠. 이건 저의 신앙고백 입니다. 듣다보면 지루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나요? 다만 고요함 속에서 공감하고 희망을 나누길 바랄 뿐이에요. 그래서 리듬이나 곡조 등 형식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밥 먹기도 힘든 시절 아이스하키는 부잣집 아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한 집사네 집안은 가난했다. 열기가 치솟던 젊은 때 반항과 오기로 삶을 헤쳐 갔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집사는 지난 1978년에 큰일을 저질렀다. 슈라인 오디토리엄을 빌려 모친의 은퇴공연 무대를 마련했다. 그의 어머니는 가요 ‘연락선은 떠난다’를 부른 가수 장세정이다. 아카데미 수상식이 열리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을 빌린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던 때였다. 배우 최무룡, 코미디언 양훈, 가수 조영남 등 연예인 40여 명을 출연시켰고 극장은 고향을 그리는 이민자 관객으로 가득 찼다.

“초등학생 때 교회서 빵을 준다고 해서 나갔죠. 그 이후로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40대 들어와 7여년 방황했습니다. 정체모를 두려움에 시달렸어요. ‘집 나간 탕자’였죠.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주님께 돌아왔어요.”


그는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은혜’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세태이지만 대체할 말도 없다며 인생을 꾸려온 게 그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되풀이했다.

“가진 은사는 노래하는 것뿐인데 늦기 전에 아버지의 은혜를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몸은 70대 노인이 가질 만한 병을 골고루 갖췄어요. CD를 듣다가 ‘이 대목에서 힘들었구나’하고 느끼는 소절이 있을 거예요. 저의 상황에서 그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집사는 지난 2002년까지 10년 동안 라디오서울에서 ‘사랑의 노래, 평화의 노래’를 진행했다. 찬양곡 선곡부터 목사의 멘트와 예화까지 PD와 MC 몫을 다했다. 하나님의 일로 알고 전력투구하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별의별 무대경험을 다 했죠. 세상무대는 경험이 쌓일수록 쉬워져요. 그런데 찬양무대는 정반대입니다. 매일 해도 어렵고 조심스럽죠. 나성영락교회에서 선교회 찬양을 15년째 인도하고 있지만 항상 선곡부터 노래하는 것까지 모두 어려워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니까요.”

한 집사는 지난 1996년과 2005년에 찬양집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인생 황혼의 언덕 위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는 그의 잔잔한 찬양이자 진솔한 고백이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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