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 수복의 감격

2015-06-2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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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규환 / 전 워싱턴 공군전우회장

65년 전인 1950년 6.25 발발 3개월이 되어가던 9월15일 미군과 우리 해병이 역사적인 인천상륙 작전 성공 후 서울로 진격했다. 당시 공산군 치하의 서울은 연일 계속되는 미군의 공습과 식량 고갈, 강제 의용군 징집, 노력봉사 등으로 시민들의 삶이 처절했다.

진군 다음 날 미군기의 엄호아래 탱크를 선두로 경인가도로 진격, 완강히 저항하는 인민군과의 사투 끝에 인민군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노량진으로 진격한 미군은 전폭기의 엄호와 막강한 화력으로 적을 제압 후 단숨에 노량진 한강교 남단에 도착해 대열을 정비, 한강 도강작전에 돌입했다.

얼마동안 한강을 경계로 전쟁이 소강상태로 지속된 후 공군기의 폭격과 포격으로 서울은 불바다가 되었다. 마침내 의정부가 함락되어 탈주로가 차단된 적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우익인사를 집단으로 학살하고 식량창고와 건물 등을 불태우며 만행을 저질렀다. 공군 무스탕 전투기가 적의 패주 무리들을 폭격하고 우리 해병대는 사기충천하여 단숨에 중앙청을 탈환했고 태극기를 게양함으로 수도 서울은 탈환되었다.

9월28일 포탄연기로 가득한 중앙청에서 서울수복 정부 환도식이 거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장군은 우리민족의 구원자입니다. 역사에 길이 기록 될 것입니다. 고맙소”라며 치하했고 대통령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태극기는 하늘 높이 휘날리고 우렁찬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만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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