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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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미국의 노예제도 (1)

2015-06-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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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역사 제58호 미국의 노예제도 (1)  
<조태환>
 
 한때 한국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후진국가 사람들은 미국을 천국과 동의어쯤으로 착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노예제도’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들은 즉시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인도적이고 잔인하게 노예들을 착취한 지옥 같은 나라’라고 분개해 가면서 혹평을 하기도 한다. 사실상 미국에는 거의 천국과 거의 지옥이 공존해오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천국과 지옥이란 표현은 다 조금 과분한 착각이다.

그러면 무슨 이유로 미국은 외국인들로부터 위와 같은 오해를 받게 된 것일까? 일본의 천황은 궁중을 떠나서는 결코 국민들이 보고 있는 장소에서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천황 같은 거룩한 존재는 자신들처럼 대소변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환상을 순간적이나마 깨지 않으려는 것이 그 이유이라고 한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어느 높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 우리와 똑같이 또 한 인간으로서는 당연하나 다소 어색해 보이는 자연스럽고 평범한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이 마치 천박한 속물적인 행동이나 한 것처럼 비판하는 어리석은 근성들이 있다. 아마 “미국의노예제도” 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우선 놀라고 다음순간 냉철하게 비판적이 되는 이유도 위와 같은 논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 같은 천국에서 어찌 지옥 같은 노예제도가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미국은 소위 청교도정신이라는 것을 가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온 세계가 우러러 볼 ‘언덕위의 모범적인 집’을 짓겠노라고 공언하고 와서 천신만고 끝에 세운 나라이다. 이런 나라가 어찌 비인도적인, 비모범적인 노예제도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써서 초기 미국 농업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단 말인가? 어쩌면 우리가 더 혹독하고 불공평한 잣대로 미국을 재고 있는 까닭이라 고도 생각된다.

  미국의 노예제도를 연구해 보기 전에 ‘노예와 제도’라는 것을 잠시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하자. 광범위한 정의로는 “노예는 자신의 신분이나 직분을 자의로 떠날 수 없으며, 주어진 임무를 거절할 권리가 없고,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요구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도라는 것이 법률로 규정된 곳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전통과 관습으로 규정된 곳들이 더 많았는데 제도가 법률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속박이 덜 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1981년에 서북부 아프리카의 Mauritania에서 노예제도가 불법화됨으로써 법적인 노예제도는 전 세계에서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 되었다가 없어진 셈이지만 사실상의 노예들은 전 세계에 상존하고 있다.

  얼핏 한국 사람들이 듣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노예제도라는 것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노예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잡아본다면 우리나라에도 노예들이 근래에 까지 머슴, 가정부, 식모, 도우미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존재해왔었으며 조선조 때에는 귀양 간 사대부집 마나님들이나 딸들이 관비로써 처벌 받았던 적이 허다하였다.

고려 말까지는 노비제도가 훨씬 더 제도화되어 있었던 까닭에 공민왕 밑에서 정치실권을 쥐었던 요승 신돈이 제일 먼저 내세운 4대개혁 정치안에 ‘노비제도 폐지’가 있었다. 처우의 잔혹성 정도에 차이는 있었을 줄 모르나 우리도 과거에는 아주 숙달된 노예주의자들이었음을 상기하면서 미국의 노예제도도 살펴 봐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예제도는 인류가 자연의 상태에서 이동을 해가면서 동식물을 잡아먹고 살던 수렵시대를 지나서 한 지역에 정착해 농사를 지어먹고 살던 농업시대가 시작되면서 곧 생겨난 제도인 것 같다. BC 8,000년경에도 애급에서 노예를 쓴 것 같은 흔적들이 있다고 하며 명칭이야 어쨌든 간에 노예 같은 성분의 인력이 동원되지 않고서야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같은 초거대 건조물들을 건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는 부족 간의 전쟁 끝에 패전한 쪽이 승전한 쪽의 노예가 되었음으로 노예가 어느 특정 인종이나 피부색깔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었던듯하다. 아라비아의 ‘천일야화’에 백인노예가 사역하는 것을 보면 노예가 유색인종에 한정되어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진시 황릉이나 인도의 고대 문화가 노예들의 힘이 아니고서는 건축되지 못했을 것이다.


콜럼부스가 도착하기 훨씬 이전에 북남미 아메리카에서도 원주민들 간에 노예제도가 성행했었다고 하며 백인들이 침략하기 훨씬 전부터 아프리카에서는 타부족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쓰던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 희랍문화가 노예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으리라고 하는데 노예제도 활용의 극치는 BC 27여년쯤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로마제국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세계인구의 4분지 1을 지배하면서 거의 500여 년간 계속된 로마제국의 전성기에는 거주민의 삼분지일이 노예들이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노예들은 흔히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발에 쇠고랑을 차고 농사를 짓는 부류들만이 아니었다. 노예들의 직종은 다양하여서 물론 농장노예나 건축노동자 같은 힘든 일들을 도맡아 했었지만 많은 노예들은 요즘으로 치면 최고급 전문직인 건축기사, 공사감독, 군인, 경기장투사, 각종의 운동선수 등도 있었다. 8년에 걸쳐서 7만 명의 관객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도록 지은 Roman Coliseum도 노예의 손으로 쥐어졌으며 황제, 귀족, 서민 등이 응원하는 가운데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혈투를 벌리는 투사 (Gladiator)들도 노예들이었다.

영화에서 Victor Mature나 Robert Taylor 같은 미남배우들이 배역으로 나와서 마치 전쟁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Gladiators 는 투우장에 나가서 관중들 앞에서 혈투하도록 길러지는 투우들과 매한가지인 결사투사인 노예들이었다. 이들의 목숨은 황제의 엄지손가락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파리 목숨과 같은 존재들이었고 광기어린 관중들의 동물적인 잔혹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예들이었다. 로마의 사치와 성도덕의 문란은 계속 확대되어오던 식민지들로부터 약탈해온 재화를 다 탕진하고도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었다 로마의 성도덕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얘기가 있다. 로마의 귀부인들은 Gladiator가 혈투할 때 흘리는 땀방울이 최고의 최음제라고 생각하여서 그 땀방울을 구해서 마셨다고 한다. 역사에 나오는 얘기이라니 전혀 헛소리는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에도 노예제도가 있었으며 영국은 1,102년에 노예무역을 불법화 하였으나 무역은 계속되었고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영국은 최대의 노예무역 국가였다고 한다. 러시아에도 혹독하게 착취당해왔던 ‘Serf’ 라는 농업노예들이 1,880년대까지 있었다.

중세까지 성행하던 노예제도를 없애보려는 교황의 칙령들이 여러 번 있었다고는 하지만 일관적이지도 않았고 편파적인 것이 많았었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노예가 되는 것은 금지하였으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이 아랍인들을 노예로 판매하는 것은 허용하였고 미 원주민들을 노예화하는 것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1,500년경에는 교황 영향권하의 나라들이 동유럽 국가들을 점령하고 패전국사람들을 징발하고 노예로 만드는 것은 허용하는 등이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는 지금도 3천여만명의 각종의 노예들이 전 세계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들 노예들 중에는 인신매매로 팔리는 사람들, 강제로 징집된 소년군인들, 형식적으로 입양되어 가정노예가 된 아이들, 강제로 고용된 가정부 등이 포함된다. 이들 중에는 제2차

전쟁 말기까지 일본군에 의해서 ‘종군위안부’나 ‘정신대’라는 터무니없는 명칭으로 희생당한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여러 나라에서 강제 징발되어온 성노예들도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전쟁범죄의 사죄조차 거부하는 원시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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