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꿩이 날아간 자리 / 양문규

2015-06-2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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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날아간 자리 / 양문규

김진실 ‘나의 숲’

가시덤불숲에 꿩들이 짝을 져 노닌다
간밤에 노루도 다녀갔나 보다
똥 무더기가 한 짐이다
깊은 산에 살아도
볕 잘 드는 언덕이 그리운 것인가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놀란 꿩들이 푸드득 날아간다
지나가는 새들도 바삐 바삐 몸을 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자리,
그 옛날 아버지 나뭇짐 해 나를 때
지게 받쳐놓고 쉿, 하던 자리다
함박눈 내려앉는 이른 아침
어느새 나도 그 자리의 주인이 되어 있다.


/ 양문규 (1960- ) ‘꿩이 날아간 자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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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남부에는 몇 주일 째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더위 속에서 읽는 산골의 겨울시는 맛깔스럽다. 함박눈 내려 온 세상 눈부신 아침, 나뭇짐을 나르시던 아버지와 함께 보던 꿩, 그리고 그보다 더 풍성한 고요가 번지는 꿩 날아간 빈자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겨울 풍경을 꿈꾸며 유난히 일찍 온 여름을 맞는다. 환경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가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지는 날들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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