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업주부는 억울하다

2015-05-2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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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아영 / 데이비스

살면서 소위 ‘여성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딸’이라는 혹은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차별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부부가 뭐든 똑같이 반반 해야 한다 생각하는 남편을 만난 덕에, 결혼을 하고 나서도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본의 아니게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어쨌든 직장을 쉬니까 얼마나 좋으냐며 부러움을 내비치곤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가사 노동’에 전면 노출된 내 생활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았다.

얼마 전 남편이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도와줄게”라고 하는데 갑자기 화가 나는 것이다. “그게 원래 내 일이야?” “그럼, 당신은 지금 돈을 안 버니까 집안일을 해야지.” 맙소사. 그건 원래부터 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 미혼으로 유학을 왔다면 혼자 힘으로 다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같은 시간 직장에서 일한다면 내 몫으로 돌아오는 월급이라도 있을 텐데, 당신이 나를 도우미로 고용한 것도 아니면서 내가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니. 사랑한다는 이유로 희생이(대가 없는 노동은 분명 희생이다) 정당화될 수는 없다. 최소한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다행히도 남편은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여전히 저렇게 생각하는 남편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어쩌겠는가. 30년 넘게 엄마의 희생을 당연히 생각해 온, 그걸 이제야 깨달은 나부터 반성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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