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는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다’ ‘에이즈(AIDS)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특정지역 인종을 몰살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다이애나 사망에는 영국왕실이 개입했다’-. 또 뭐가 있더라.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이다. 그리고 CIA 등의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음모론’(conspiracy theory) 중의 일부다.
음모론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한국사회다. 모종의 사태에 대해 정부가 발표를 한다. 사람들은 안 믿는다. 국정원의 보고는 아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하기는 어떤 면에서는 무리도 아니다. 국내 정치상황이 꼬인다. 그럴 때면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정보당국이었다. 일종의 북풍 조작이다. 이런 전례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말 그대로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나, 국정원 발표를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틈새를 타고 만연하는 게 각종 음모론이다.
천안함 폭침 5주기가 지났다. 민·군 합동조사단 활동이 마무리되고, 백서까지 발간돼 대부분의 의혹들에 대한 반론이 공개됐다. 그런데도 아직도 증거를 대라는 주장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달구고 있다.
‘현영철 처형설’을 놓고도 말이 무성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인터넷 매체들은 그가 여전히 북한 TV에 녹화영상이 나온다는 지적과 함께 국정원 음모론을 제기한다.
이 음모론 확산에 일조를 하는 것이 한국 내에서 짜깁기 식으로 인용 보도되는 이른바 ‘일부 외신’이다. “뉴욕타임스, 北 현영철 처형 첩보 의문” - 지난 주 한 국내 신문의 기사제목이다.
그 기사의 첫 문장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북한의 현영철(66)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30일 공개 총살됐다는 국가정보원의 첩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다른 인터넷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3일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충격적인 처형 소식을 보도하고 이런 사실이 한국 국정원을 통해 알려졌으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사건의 진위와 국정원이 공개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이 보도대로라면 미국의 대표적 언론인 뉴욕타임스는 국정원의 현영철 처형 발표를 거의 불신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동기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뉴욕타임스는 “국정원 발표의 진정성에 대해 한국 내 (일부)분석가들은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정작 초점이 맞추어진 부문은 불안한 김정은의 권력구조였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현영철 처형 첩보에 의문’식으로 보도된 것이다.
음모론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독버섯처럼 번진다. 특히 상대를 상종하지 못할 원수로 여기는 극단적 사고방식이 지배할 때 그 사회는 음모론의 온상지가 된다.
미친 소가 인터넷이란 무한 공간 대를 날뛰는 사회. 정부가 국군장병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괴담이 진실인 양 받아들여지는 사회, 그리고 또 다시 만연하는 현영철을 둘러싼 음모론. 아무래도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 이는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