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트만두의 비극

2015-04-2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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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눈이 시리게 푸른빛 호수가 히말라야 산속에 있었다고 한다. 호수 위에는 완벽한 모양의 눈부신 연꽃이 떠 있어 신(보살)들이 경배를 하러오곤 했다. 그중 만주슈리(문수보살), 지혜의 보살은 연꽃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불타는 지혜의 칼로 호수 모퉁이를 잘라냈다. 그러자 호수의 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연꽃이 바닥에 안착하면서 계곡이 만들어졌다. 바로 카트만두 계곡이다.

전설로 내려온 이 이야기가 역사적 근거가 있다니 재미있다. 히말라야 산기슭인 이곳은 3만년 쯤 전 호수였다고 지질학자들은 말한다.

불교의 성지인 이 계곡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투파(불탑)가 있다. A.D. 450년경에 세워진 거대한 불탑 스와얌부나트이다. 전설은 이어진다.


계곡의 연꽃이 자라 스투파가 되고, 만주슈리가 깎은 머리카락들이 나무가 되어 주변 언덕에 성스러운 숲이 만들어졌다. 스와얌부나트에는 유난히 원숭이들이 많이 살아서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데, 이들 원숭이는 원래 만주슈리의 머릿니라고 전설은 또 전한다.

신들이 살았다는 계곡, 그래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카트만두 계곡이 슬픔의 계곡이 되었다. 진도 7.8의 대지진으로 카트만두 일대가 초토화했다. 사망자가 현재로서는 거의 5,000명으로 집계되지만 각국에서 모여든 구조대가 무너진 건물과 돌무더기 사이를 헤치며 구조작업을 펼치면 앞으로 사망자가 얼마나 더 확인될지 알 수가 없다.

인명 피해 못지않게 안타까운 것은 역사적 유산의 손실이다. 석가의 탄생지가 있는 네팔에는 불교 유적지는 물론 힌두교 사원, 왕궁 등 문화유산들이 많다. 이번 지진으로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들이 상당수 무너지고, 훼손되었는데 특히 카트만두 계곡에서 피해가 심했다. 스와얌부나트도 무사하지 못했다. 스투파 상단부에 그려진 부처의 눈 - 지혜와 자비, 진리를 상징하는 3개의 눈들이 경내의 무너진 건물 잔해와 저 멀리서 생지옥으로 변해버린 카트만두를 굽어보고 있다.

네팔의 강진은 예고되었던 재앙이다. 유라시아 지각판과 인도판이 맞물려 서로 밀쳐내고 있는 이 지역은 대략 75년마다 한번씩 진도 8 규모의 대지진이 이어져왔다. 1만명이 사망한 지난 1934년 지진이 이에 해당한다. 다시 또 대지진이 올 때가 되었다는 경고는 수년 전부터 있어왔다. 미리 대비를 했다면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네팔의 비극은 지진대 위에 위치해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정부가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비극이다.

근 240년 역사의 네팔 왕국은 지난 2007년 1월 민주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그 전 10년의 내전과 공화정 도입 이후의 정쟁을 거치며 네팔은 정치적 혼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네팔 연방민주공화국 8년 동안 총리가 9번이나 바뀌었고, 아직 헌법도 완성하지 못했다. 정부는 재난 대비에 신경 쓸 기력이 없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인생은 고해라고 가르친 석가모니의 고향, 네팔에서 중생의 삶은 말 그대로 고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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