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가운데’가 필요한 사회 (최상석 / 성공회 사제)

2015-03-18 (수) 12:00:00
크게 작게
요즘 언론에 갑질, 극단, 극우 혹은 근본주의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최근 이런 입장을 지닌 개인이나 단체에 의하여 일어나는 사회적 국제적 갈등이 적지 않다.

‘땅콩 회항’에서 보듯이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행해지는 횡포들, 잔혹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문화재 파괴를 자행하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그리고 며칠 전 주한 미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 아무개라는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행태가 그렇다. 역사 왜곡을 불사하고 밀어붙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편협하고 반역사적인 극우 행보 역시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신념 이외에 다른 사람의 처지나 존엄성 혹은 신념에 대한 고려나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갑만 존재 할 뿐 을이 없는 인간관계이다. 극우 아니면 극좌만 있을 뿐이다. 양극단만 존재하는 이런 사회는 끊임없는 배척과 횡포와 폭력 등 상호 갈등만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한 마디로 서로를 존재하게 해주는 공통의 기반인 ‘한 가운데’가 없는 사회다.


사람과 사람 사이나 우주의 자연 만물은 모두 ‘한 가운데’를 가지고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 ‘한 가운데’를 중(中)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이 한 가운데는 곧 물체의 중심이고, 인간관계의 중앙이며, 도덕과 윤리적 행동의 원리인 중용이다.

모든 물체는 ‘한 가운데’ 곧 중심을 갖고 있다. 아니 ‘한 가운데’가 있어야 물체가 존재 한다. 어떤 수학자도 ‘한 가운데’ 없이는 원을 만들 수 없다. 모든 도형은 한 가운데 곧 ‘중심’이 있다. 아주 작은 원자나, 달이나 태양이나 거대한 지구를 비롯하여 자연의 모든 물체는 중심 곧 ‘한 가운데’를 가지고 있다.

물체와 물체 사이에도 ‘한 가운데’가 있어야 함께 존재한다. 달과 지구도, 지구와 태양도 그 사이에 ‘한 가운데’가 있다. 이 ‘한 가운데’가 있기에 수십 억 년 간 달과 지구와 태양이 서로 위성과 행성과 항성이라는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이루며 우리와 자연의 생명을 유지시켜 왔다. 만일 이 ‘한 가운데’의 균형이 무너지면 달이나 지구는 태양에 흡수되어 일순간 그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어디 도형이나 물체뿐인가?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한 가운데’ 있다.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물리적 거리를 친밀한 거리(1.5ft 이내), 사적인 거리(1.5-4 ft), 사회적 거리(4-12ft) 등으로 나눈 바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이 정도의 물리적 ‘한 가운데’가 있어야 서로에게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고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물리적 ‘한 가운데’ 보다 더 중요한 도덕적, 윤리적, 이념적 ‘한 가운데’가 있다. 이 ‘한 가운데’ 가 있음으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해 주어 함께 공존하는 상생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부모와 자녀 간에, 부부 사이에,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백인과 흑인 사이에, 갑과 을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종교와 종교 사이에 넘지 말고, 깨지 말아야 할 ‘한 가운데’가 있다.

이 ‘한 가운데’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바른 길(中途)이요,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정(中正)이요, 양극단의 가치를 수용하는 가운데 진리를 찾는 가운데 길(Via Media)이요, 한자문화권의 중용이다.

‘한 가운데’는 양쪽 모두를 존재하게 하는 참으로 신묘한 자리이며, 서로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는 가운데 양측 모두에게 상생의 삶을 가능케 하는 풍성한 어울림의 자리요 창조적 윈윈(win win)의 자리이다.

갑은 을과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하고, 극우나 극좌, 종교 근본주의는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로 ‘한 가운데’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사는 길, 바르게 사는 길, 인류 모두가 사는 길이 여기에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