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벚꽃 / 고영민
2015-03-17 (화) 12:00:00
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며칠을 더 지체했습니다
당신을 업고
천변에 나옵니다
오늘밤 저 꽃들도 누군가의 등에
얌전히 업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나무가 흘러내리는 꽃을
몇 번이고
추슬러 올립니다
무거운데
이젠 나 좀 내려다오, 아범아
내려다오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 더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당신을 업고 나무에 올라
풀쩍, 뛰어내렸습니다
/ 고영민(1968- ) ‘밤벚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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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을 받아 어둠 속에 화사하게 지는 벚꽃 길은 막 피어나는 꽃길보다 아름답다. 흠뻑 익어 우수수 지는 꽃들의 농익은 비애를 어린 꽃잎들은 당할 수가 없다. 화자의 등에 업혀 밤하늘에 걸린 꽃들과 흩어져 누운 꽃들 사이로 등장하는 늙으신 어머니는 화사한 꽃길의 이미지에 인간사의 무게를 물씬 더해준다. 벚꽃 흐드러지게 지는 천변이 저토록 곱고 애달픈 것은 저마다 지고 가는 뼈아픈 사연들 때문이리라.
<임혜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