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 황동규
2015-03-10 (화) 12:00:00
혼자 몰래 마신 고량주 냄새를 조금 몰아내려
거실 창을 여니 바로 봄밤.
하늘에 달무리가 선연하고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비릿한 비 냄새.
겨울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
냄새 맡기 분주하다.
형광등 불빛이 슬쩍 어두워진다.
화초들 모두 식물 그만두고
훌쩍 동물로 뛰어들려는 찰나!
/ 황동규 (1938- ) ‘봄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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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리 어룽대는 습습한 봄밤이 비릿한 출산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디어온 이들이 깊은 곳으로부터 몸을 풀고 있다. 새 생명을 낳아놓기 좋을 만큼 대지는 어둡고 축축하고 뜨겁다. 식물들조차 동물처럼 욕망에 눈뜨는 밤, 한 잔의 술에 훈훈해진 시인의 오관에 봄의 향기가 짙게 밀려온다. 화초들조차 뛰어다닐 듯 팽팽히 부풀어 오르는, 살아있는 봄밤이다.
<임혜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