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빨간 등불이 창을 열면 파란 동화가 시작된다

2015-0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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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에몽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

▶ 유배지에서 관광지로 변신한 고카야마 산촌지역

[도야마현 고카야마 <상>]

공항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다소 낡아 보이는 누런 외관의 전차가 지나는 도야마(富山)시 중심가에는 또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였습니까?” 도야마현 관광과 4년차 공무원 스기모리의 조심스런 질문이 이어졌다. 다카오카(高岡)시와 히미(氷見)시의 관광지와 숙소는 어땠는지,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은 만족스러웠는지 등 3박4일간 진행한 팸 투어에 대한 설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신이 숨어 있다’는 속담처럼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일본인의 특징이 지방공무원의 태도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최고’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카야마(五箇山) 산악지역의 일본 전통가옥으로 모아졌다.

일본 중서부 호쿠리쿠(北陸) 지역에 위치한 도야마현은 동해를 기준으로 보면 경북 영덕 건너편쯤이다. 충남 절반 크기에 15개 기초 자치단체, 인구 110만의 작은 현이다.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는 다테야마(立山) 연봉에 둘러싸인 넓은 분지로 전통 농업지역이기도 하다.

1월 말, 도야마현 제2의 도시 다카오카 시내는 한 곳으로 치워놓은 눈이 군데군데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불편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해안 지방이라 기온이 0℃ 안팎으로 내린눈이 얼지 않기 때문이다. 다카오카 중심부에는 파란 하늘색 바탕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도라에몽’ 전차가 운행한다. 이곳은 수십 년간 전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화영화 도라에몽의 원작자 후지코 F. 후지오(藤子 F. 不二雄, 1933~1996년)의 고향이다. 2량짜리 파란 전차가 흰색과 검정 사이 회색톤 일색으로 칙칙해 보이는 도시 분위기를 일순간에 만화영화 세트로 바꿔놓는다.

시내에서 남쪽 난토시 고카야마(五箇山) 산악지대로 가는 길은 평지에서 조금만 벗어나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1,345편에 달하는 에피소드에서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도라에몽의 한 장면처럼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하얗게 눈꽃이 오르는 설경에 감탄사가 시작될 즈음, 버스는 오마키온천 선착장에 일행을 부려놓았다.

쇼가와 유람선은 강과 맞닿은 산자락에 위치한 오마키 온천에 이르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쇼가와 강을 가로막은 고마키 댐에서 약 25분이 걸린다. 기온은 더 내려가지 않았는데 눈송이가 초록색 호수 위로 흩날린다.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던 물새도 멀리 도망가지 않고 위험하지 않을 만큼만 유람선에 자리를 내준다. 설산 위로 간간이 내비치는 햇살에 흩날리는 눈발이 만화영화처럼 얼굴에 부딪힌다. 눈꽃 속의 선상 유람이 꿈속을 미끄러지듯 비현실적이다. 선착장에서 오마키 온천까지 편도요금은 1,400엔이다. 이 지역의 겨울 평균 적설량은 3~5m, 설경은 2월 중순까지 절정이고 3월 초순까지 볼 수 있다.


2차선 도로는 강 상류로 계속 이어진다. 가파른 절벽 경사면을 따라 이어진 도로는 터널이 절반 이상이다. 완전히 막힌 터널이 아니라 호수 쪽은 지지대 사이로 경치가 보이는 반 터널이다. 그 위로 한 키는 넘을 듯한 눈이 쌓여 있다. 낙석 피해도 막고 제설작업도 필요 없는 일석이조의 경관 터널인 셈이다.

첫 번째 휴게소는 600년 역사의 일본 전통종이 와시(和紙)를 만드는 마을이다. 닥나무껍질을 벗겨 삶고 찧어 묽은 죽으로 만든 다음 틀로 떠서 한 장씩 말리는 과정은 한국의 전통 한지를 만드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닥나무껍질을 눈 위에 2주간 말리는 과정에서 습기를 충분히 공급해 섬유질을 부드럽게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만 가능한 공정이다.


와시 공예품을 파는 전시장 한쪽에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작은 틀에곤죽을 뜬 다음, 자연재료에 색을 입힌 풀잎과 나뭇잎으로 장식한다. 수첩 크기 3장의 와시에 자신만의 장식을 더해 1,000엔을 받고 있다. 번거롭지 않으면서 소소한 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휴게소에 마련한 체험장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고카야마 산촌지역이다. 해발 300~600m 산간지역에 60여개의 고만고만한 마을이 흩어져 있다. 화전농사에 옻나무 진을 짜고, 겨울에는 와시를 만들고, 여름에는 누에를 치는 게 이 산촌마을의 주된 경제활동이었다. 누에 분뇨와 유황을 이용해 화약을 생산하기도 했다. 중세 가가한(加賀藩) 시대에는 정치범의 귀양지였다니 산촌의 궁벽함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의 갓쇼즈쿠리(合掌) 전통가옥은 근래에 새롭게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수직에 가깝게 맞대고 있는 지붕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 맞춘 3~4층 높이 기둥과 서까래에 두껍게 억새를 얹었다. 겨울 한철 5m에 가까운 눈도 자연스럽게 쓸려내려 붕괴의 위험에 대비한 형태다.

가미나시(上梨) 마을의 국가지정 문화재 무라카미가(村上家)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에도시대부터 전해오는 전통춤 고키리코 공연을 볼 수 있다.

원래는 매년 4월과 9월26일 마을 축제 때 선보이지만 요즘은 관광객을 위해 상시 공연한다. 우리의 지신밟기처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액운을 막고 풍요를 기원하던 것에서 유래한 모양이다.

# 여행팁

●3월14일 신칸센이 개통되면 도쿄에서 도야마까지 2시간8분에 닿을수 있다. 현재 JR 열차로는 3시간20분 정도 걸린다.

●노랑풍선 여행사에서 도야마현과 인근 나가노현 주요 관광지를 묶은 3박4일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 고카야마 산촌지역 여행상품은 없다.

●도야마현 관광 홈페이지 http://foreign.info-toyama.com/kr에서 한국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관광신문(02-737-1122)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도야마 / 최흥수 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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