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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방인숙의 천섬과 캐나다 여행 (3)

2015-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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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같은 건축물과 만산홍엽의 조화 감탄 절로

수필가 방인숙의 천섬과 캐나다 여행 (3)

캐나다 국회의사당 앞 연방 100주년독립기념 성화

오타와 국회의사당 중심은 1차대전때 전사한 병사 추모실 있는 평화의 탑
입구쪽엔 캐나다연방 100주년 독립기념성화인 365일 내내 타오르는 불

오타와의 랜드 마크로 연간 3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을 맞는다는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오타와 강과 다리건너 퀘벡 주의 가티노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팔러먼트 힐(Parliament Hill)에 있다. 광장 뒤에 유럽의 성처럼 버티고 선 의사당은 3개의 큰 석조 건물로 이어졌다. 중심에 89.5m의 높이 솟은 시계탑이자 평화의 탑 건물엔 전망대도 있다.

평화의 탑엔 1차대전시 전사한 캐나다병사 6만 명의 추도실과 한국전 전사자들도 있다. 양쪽 건물은 빅토리아시대의 고품격양식으로 상하원들 사무실과 내각장관 집무실이다. 네오고딕 양식에다 성채같이 웅장한 위용에 연초록청동지붕으로 첫인상은 성당이다. 건물 위에서 휘날리고 있는 국기만이 관공서 티를 낸다. 1867년에 완성됐던 의사당은 화재로 소실됐고, 1922년에 재건돼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의회도서관도 로켓같이 꼭대기가 뾰족해 동화나라다. 막 해넘이 때라 초록빛건물 몸체가 더 예술적이고 장엄하다. 사람을 압도시키는 긴장감이 아니라 저절로 경건함이 솟게 하는 고아함이다. 저리 숭고해 보여도 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여의도 의사당 안과 똑 같을까? 한약 마신 뒤끝처럼 씁쓸해진다.

입구 쪽에 캐나다연방 100주년 독립기념성화인 365일 내내 타오르는 불(The centennial Flame)이 있다. 알링턴의 케네디묘지나 파리 개선문의 불보다 불꽃이 강하고 모양도 독특하다. 다른 불꽃들은 바닥에서 일렁이었는데, 여긴 불꽃이 기단 위에서 타오른다. 불꽃이 피는 작은 원형의 제단 아래로 뺑 돌아 물이 흐르는 분수다. 원형지붕처럼 약간 내리막인 화강암기단 아래로 흘러내린 물은 우물처럼 둘러친 벽안의 바닥에 고이게 돼있다. 원래 물과 불은 상극인데 완벽하게 조화시켰으니 색다른 표현의 진수다. 역발상의 미다.

정원도 영국식인 광장식 정원인데 때론 시위장소로 활용된단다. 광장 밖의 담장이 까만 철 구조물로 예쁘다. 가로등조차 돌탑 위 뾰족한 곳에 풍선들을 동그랗게 매달아놓은 듯하다. 얼마나 세세한 데까지 미를 추구하며 건립했는지 짐작되는 바다. 저녁으로 한국식당에서 뜨거운 김치만두전골을 먹으니 보약이 따로 없다. 버스울렁증도 가시고 속이 개운하다. 아니 한민족만의 공유느낌과 표현인 ‘시원하다!’

호텔방 창문으로 내다본 오타와의 야경은 야단스럽지 않고 단아하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건축된 신 고딕 양식의 건물이 많다. 계획도시의 면모 외에도 고전적인 분위기가 녹아있다. 유럽의 한 도시에 와있는 느낌이다. 주택들이 미국의 집들보다 지붕의 경사가 급하고 뾰족한 편이라 좀 낯설다. 잦은 폭설에도 눈이 잘 녹아 내리게 하기 위해서란다. 오타와의 가장 명물인 유네스
코 세계유산인 리도(Rideau)운하를 못 봤다. 그러기에 여행자는 모든 것을 다 보지만 관광객은 볼 것만 본다고 하나보다. 청계천도 못 봤으니 논할 자격도 없지만...

캐나다의 알프스 퀘백의 로렌시안 고원 몽트랑블랑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 지녀
트랑블랭 호수는 유람선 타고 1시간10분 동안 한 바퀴 돌고나서야 호수란걸 실감
■ 몽트랑블랑

여행의 설렘인지 자다 깨다 반복 끝에 5시 전에 일어났다. 일찍 준비완료하고 주변답사에 나섰다. 바로 옆이 야구장인데 건물과 입구가 서울 운동장과 판이하다. 스포츠에도 문화의 차이가 크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호텔 뒤가 하이웨이인데 도로변의 야생화들은 뉴욕과 비슷해 반갑다. 색깔부터 다른 도로안내 표지판만 뉴욕 아니란 점을 일깨워준다. 이웃나라라고 꽃들에겐 국경이 없는데, 사람이
개입된 국경의 차이는 칼날같이 존재한다.

호텔서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했다. 첫 일정은 ‘캐나다의 알프스’라는 퀘벡의 로렌시안(Laurentian)고원에 위치한 몽트랑블랑 방문이다. 몽트랑블랑을 지명이름으로 알았는데, Mont-Tremblant이다. Mont가 불어로 산이라 몽트랑블랑은 불어로 ‘떨리는 산’이란 뜻이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산간마을로 들어섰다.

몬트리올에서 북서쪽으로 81마일이고 오타와에선 북동쪽으로 87마일 떨어졌다는데, 아주 먼 먼 나라의 시골에 온 느낌이다. 집들이 낮고 빨강 오렌지 파랑지붕으로 단장한 지중해스타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넓은 정원이 아닌 소박한 화단들엔 코스모스가 하늘대 더 정겹다. 공중화장실이 Dames(마담), Hommes(남자)로 불어표기다. 남녀 그림이 없다면 불어문맹자는 낭패하기 십상이다.


트랑블랭 호수(Lac Tremblant)로 갔다. 어찌나 장대한지 끝이 안보여 강이려니 했다. 유람선을 타고 1시간 10분 동안 한 바퀴 돌고나서야 호수란 걸 실감했다. 배타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지개송어 보다 물 급수가 더 높아야 산다는 스펙클 송어(Speckled Trout)를 낚는 중이라니 청수다. 요트 외에도 카누 타는 사람들로 호수는 더욱 한갓진 풍경이다.

호수연안의 전원적인 별장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건축이 얼마나 멋진 예술인지를 실증해주는 모델하우스들이다. 아담한 통나무로 지은 목가적인 스타일도 있고 파스텔 톤의 콜로니얼스타일 등, 참 낭만적이다. 약간 높은 산기슭 짙푸른 숲에 둘러싸여 숨은 듯 인사하는 형세라 절대 거하지 않다. 드문드문 거리를 유지해 그림이 더 산다. 거기다 뒤의 배경은 만산홍엽으로 병풍을 친 격이니 얼을 뺏길 만큼 반
하겠다.

주민들의 삶과 소담스런 일상을 배위에서 엿 본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와인이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들이 자연에 녹아든다. 인간들은 자연에 티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저 들은 자연의 그림을 완성시켜주는 화룡정점이다.

풍경이 너무 멋지고 로맨틱해 그런가. 그들이 꿈결처럼 행복해 보인다. 내게도 옛 시절엔 행복했던, 꿈 많던, 그림들이 있었다. 오싹하니 그리움을 몰고 오는 얼굴들이 있어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본다. 그리고 정지용의 시처럼 눈이나 감을 밖에...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눈 감을 밖에.’

배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마을길을 돌아 산 밑의 몽트랑불랑 리조트로 갔다. 벽돌건물인데 빨강, 초록색 지붕들이 이마를 맞대고 오색의 단풍 숲과 동반자의 조화를 이뤘다. 왜 퀘벡을 대표하는 휴양지인지, 단풍과 북미동부의 최고의 스키장으로 대접을 받는지 수긍이 간다. 어쩔 수 없겠지만 산이 가르마 타듯 헐벗은 채 쭉쭉 길이 난 스키장의 흔적이 가슴 아프다. 차라리 흰 눈으로 다 덮인 겨울이면 덜 눈에 거슬리련만...

넓은 자카르타광장으로 가니 한 쪽에 일자형 건물이 있다. 시계탑이 쏙 올라와 교회처럼 보이지만 오랜 시간이 누적된 상가건물이다. 광장은 일요일이라 사람들로 꽉 차 온통 축제분위기다. 둥글게들 서서 댄싱들을 한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이다. 거리의 악사들도 여러 팀이다. 토속악기인지 난생 처음 보는 톱날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생경스럽다. 검은 예복을 갖춰 입은 5명의 노신사들이 색스혼 트롬본 등 각각 다른 관악기를 불고 있다. 비록 ‘먹귀’지만 동년배란 동지의식에 응원의 박수를 아낌없이 쳤다.


케이블카를 타러 Cabriolet Station으로 갔다. 건물이마에 커다랗게 폭스바겐 엠블럼이 새겨졌다. 프랑스도 아니고 독일자동차회사 마크인 게 좀 생뚱맞다. 케이블카라도 기증했나? 어쨌든 공짜 서비스인 케이블카승차 구간은 아주 짧은 ‘맛뵈기’였다. 묘미인 곤돌라로 갈아타는 정류장은 지붕이 둥근 딱 우주선이다. E.T가 뒤뚱뒤뚱 내릴 듯하다. 우리 6명만 타는 전용곤돌라라서 오붓하다. 내려다보니 분수도 있고 자그마한 시냇물이 계단식폭포로 흐르기도 한다. 산기슭 아래엔 노천탕인지 풀장인지 사람들이 물속에 앉아있다. 우린 천상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내가 떠나 온 속계의 사람들 같다. 뭐 착각은 자유니까.

들에 핀 야생화들은 뉴욕에 흔한 노란 Golden Rod다. 산등성이와 주변 산은 노란색깔의 옷이 많은 걸로 미루어 Aspen(포플러 과)이나 자작나무가 주종인가 보다. 간간히 주황색나무와 초록침엽수들의 조화도 상큼하다. 차차 멀어지는 장난감 마을 아래로 호수도 예쁘게 누워있다. 이런 선경에, 아니 어디든지, 나무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절대로 아름다울 수 없다. 인간들이 나무보다 못한 점이, 나무한테 배울 점이 재인식되는 순간이다.

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중에서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산 정상의 몽트랑 정거장에서 내렸다. 기념품점 옆에 휴게실이자 식당인 곳으로 들어갔다. 산 정상에 있는 것치고 휑하니 넓다. 천장에 굵고 까만 나무 석가래 들이 쭉쭉 뻗어있어 넓은 산장에 온 느낌이다. 우린 멀리 트랑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멀리 산 정상에서 봐도 호수의 끝이 안보이니 정말 ‘강 같은 평화‘의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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