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우 / Caki Wikinson

2015-02-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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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음산해지고 있다. 다리와 날개 사이
창백한 거리에 비추이는 것들, 나는 떠나는데 능숙한 자
사냥에 지친, 잿빛, 여윈,
무엇에 짓눌린 듯 낮게 엎드린, 나의 형색은
사라진 그 무엇의 형색, 터지는 플래시와 텅 빈 프레임.
너는 내가 게임을 하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래, 술수를 쓰고 있을 땐 네 말이 맞는지 모르지
저녁은 떠나가듯 머물고 드디어
감각은 최고조에 이르지. 머문다는 것의 동의어,
내 다시 돌아오리라. 나는 트랩을 물어뜯고
내게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을 사랑하지.


/ Caki Wikinson ‘여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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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여우에게 있어 계략과 사냥과 생존은 분리될 수 없다. 야생적 존재의 이율배반적 비애는 결별이 싸늘하게 다가오는 저녁 무렵 최고조로 집중된다. 이때 그의 암울한 생명력 또한 초현실적 심미의 극점에 이른다. 인간의 정원으로 스며드는 고독한 야생 동물. 사랑받은 적 없는 이. 온기보다 냉정에 더 익숙한 그는 혹시 도시의 뒷골목에 버려진 우리의 이웃이 아닐까.

<임혜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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