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2015-01-13 (화) 12:00:00
두 번째 시집 [수작]에 대한 답신이 왔다
손가락 몇 번 까닥거리면
순식간에 안부가 전송되는 이 편한 세상에
우체국 소인이 꽝꽝 찍힌 답신들
두근두근 개봉해서 읽는 기분이란
메일로 보내온 편지를 읽을 때의 기분과는 사뭇 다르다
그야말로 보낸 이의 육필 그 자체가 수작(手作)이다
그렇다고 메일로 온 답신의 섭섭하다는 것 아니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투박한 필체에서는
보낸 이의 마음의 즙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 흔한 바탕체나 굴림체 또는 한컴돋움체로는
감히 따라잡지 못하는 만년필의 농담이 꿈틀 살아 있다
그 필체를 다정다감체라 부를까
마음흘러넘침체라고 부를까
메일로,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전화 한통이면 해결될
e-편한 세상 잠시 뒤로 접어두고 그는
일부러 다리품을 팔고
일부러 어느 문방구에 들려서 편지지나 카드를 골랐을 것이다
그 육필 편지들 우체통 안에서 숙성하느라고
세상 모든 우체통들은 붉게 변해버린 것이다
잉크향이 추억처럼 번지는 육필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올리브나무의 깊고 오래된 내력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 김나영 ‘이 편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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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요즘엔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으니 우체통에는 화려한 광고지만 가득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전달되기도 하는 온라인 인사, 쉬운 만큼 별 의미가 없다. 편지지를 고르고 펜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send 버튼을 누르는 일보다 진정하고 또 낭만적이지 아니한가. 더 늦기 전에 소중한 이들에게 잉크향 번지는 편지를 보내야겠다.
<임혜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