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울타리

2015-01-0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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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길 / 의사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간에 우리들 인간들은 부지불식간에 울타리를 치고 산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그래도 낫다싶은 생각이 들 때 그들과 자신을 구분하려 든다.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또 지연, 학연, 혈연 등 온갖 연줄로 울타리를 두른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도 물론 울타리를 두른다. 잘못된 종교와 사상에 갇힌 채 바깥 세계와 담장을 쌓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1950년대 후반 중고교 다닐 때, 서울 계동 골목 맨 끝자락에 있는 학교에 도달하려면 골목길에 있는 저택들을 지나야 했다. 고관대작 아니면 재벌가의 집으로 짐작되는 집들이었다. 이 집들은 하나같이 철문도 부족한지 높은 울타리(사실은 콘크리트 높은 담 벽)위에 철창살, 깬 유리병으로 철통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어린 학생시절이었지만 이상하게 느껴졌다. 방어, 보호벽이라기보다 세상과의 절연(絶緣)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감옥처럼 생각됐다.


아흔 아홉을 가진 부자들이 100을 채우기 위해 울타리 밖에 있는 하나 가진 약자들을 못살게 군다. 그러나 아흔 아홉을 가진 부류들이 정신적으로는 하나 밖에 가진 것이 없는 빈자(貧者)에 속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경제적 빈자들이 정신적으론 더 부유할지도 모른다.

올해 한인사회는 보수, 진보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색깔 논쟁은 한층 더 가열됐다. 다른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려 들기보다 무조건 공격만 하는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공격과 주장들에는 합리성 보다 자가당착적인 모순이 가득하고 비판이라기보다는 모함에 가까운 주장들이 난무했다. 건전한 토론과 상식은 실종됐다.

보수든 진보든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좀 더 겸손하게 상대의 말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것이 더 요구된다. 울타리 밖 사람들의 어려운 짐을 함께 지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성취했건, 부모 등 타인의 힘이 작용했건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룬 성공이란 없다.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독선, 오만과 무례를 벗어나 겸손과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아쉬운 시대다.

보수와 진보라는 울타리를 높디높게 쌓고는 살벌하게 서로 적대시 하고 있는 이념 전쟁은 사실 지각 있고 상식 있는 사람들에겐 안타깝고 한심스러울 뿐이다. 진보 없는 보수는 고인 물, 썩은 물이 되기 쉽고, 보수 없는 진보는 사상누각처럼 근본 없는 허상, 꿈에 머무를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근본이 있고 든든한 버팀목인 보수를 바탕으로 진취, 개혁 진보사상이 조화를 이룰 때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다.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보수가 바로 진보요, 진보가 바로 보수다. 보수와 진보는 방법만 다를 뿐이지 가려고 하는 목적지는 같다고 봐야 한다. 중용(中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보수와 진보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사회는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모범사회가 될 것이다. 새해에는 이런 한인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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