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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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38)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1)

2014-12-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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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얘기로 돌아가기 전에 기왕 얘기가 조금 빗나간 김에 미국의 Hotel 들과 미국 정치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해 보고자 한다.

Hotel(불어가 어원이라는데 ‘noble house’나 ‘city hall’이라는 의미 였다고함)이라는 복합적용도의 숙박시설들이 1800년대 초기부터 세계에서 미국에 제일 처음 생겼다고 한다. 그때까지 영국에는 투숙객이 잠자는 방들만 있는 작은 규모의 ‘Inn’ 들이 있었고 간단한 식사와 기분 좋은 한잔을 즐기기 위해서는 ‘Tavern’이라는 별도의 주점을 찾아 갔어야 했었는데 미국의 호텔 들은 이 두 가지 용도를 한 건물에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흥, 여흥 시설도 갖추어 놓고 대규모 회의를 위한 큰 강당과 중간규모의 회의실들을 갖춘 건물들을 큰 도시의 시내 중앙에 짓기 시작하였다.

호텔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나중 서부개척시대에는 개척민들보다 한발 앞서서 허허벌판에 호텔을 지어놓으면 손님들이 뒤따라오는 것처럼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호텔들은 어느 도시에서나 가장 현대적이고 아름답고 제일 큰 건물들로써 큰 성당이나 작은 궁정 같은 웅장함이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귀족들이 정치를 하기 위해서 왕궁의 방들에 모였었다면 미국의 정치인들은 호텔로 모였었다고 한다. 미국의 호텔들은 ‘Palaces of the public’이라고, 때로는 ‘The People’s Palaces‘라고도 불렸다 한다. 이 호텔들은 주나 전국 전당대회 개최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장소들이었다.

초기의 전국 전당대회가 볼티모어에서 많이 개최되었던 중요한 이유는 볼티모어에 Barnum’s City Hotel이라는 200개의 방을 갖춘 6층짜리 호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애덤스가 재선에 도전한 1828년의 대통령선거는 정강정책의 대립이기 보다는 보수와 개혁, 북부와 남부, 금융 무역 공업가들과 농장주, 노예제도 지지자들과 노예 반대주의자들의 대립 등 당시 미국의 분열적 요소들이 다 노출되어 판을 친 선거이었다.

이때의 대통령선거가 그전보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데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때까지도 여성들과 거의 대부분의 흑인들은 투표할 수 없었지만 투표권을 제한하던 규정들이 완화되기 시작하여서 어느 때보다도 유권자수가 훨씬 많아 졌었다. 거의 모든 백인들이 다들 투표권을 가지게 되자 이제는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나서서 정치에 대해서 모두 한마디씩 언급하기 시작하였고 정말 “우리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야한다” 는 방자스러운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국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기 시작하였고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초대부터 제6대까지의 대통령들의 성분을 보면 모두 ‘미국귀족’ 출신들이었고 최고의 학력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유한 명문집이나 대농장주의 자제들이었다. 아무런 법률적인 규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례적으로 위와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만이 고위공직자로 나설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지고 민주화가 되어가면서 “명문양반”은 선거직 출마에 다소 도움이 되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전에는 후보들이 목과 허리뼈가 뻣뻣하게 다소 거만한 양반답게 거동하고 돌아다니며 모인 군중들 앞에서 연설만 하고 다니는 것이 선거운동의 전부 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선거민들을 뒤쫓아 다니며 일일이 절하고 악수까지 하면서 한 표를 부탁했어야 하게 되었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면 쫓아가서 아이에게 키스해 주고 자녀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애엄마에게 아첨을 떨어야 했었다.

이제 후보들은 정성을 들여야만 귀중한 한 표를 얻게 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고 투표자들은 자기들의 한 표 값이 점점 올라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런 “귀족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이 “시건방져진 우중”들이 이제는 “우리와 같은 서민들을 선거직공무원 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선거잣대로 재어보면 애덤스는 구닥다리 양반이고 잭슨은 “참신한 서민”으로 선거민들에게 보였을 것이다. 잭슨 은 1812년 미영전쟁말의 전쟁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것 이외에는 더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유리하게 작용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잭슨 은 새 정치스타일의 대통령 제1호 이었다.


당시 미국의 진보성향세력의 대변자격이었던 대 웅변가 Daniel Webster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잭슨의 집권이 임박한 것을 보고 “태풍이 다가오는 것은 알고 있는데 풍향이 어느 쪽일 것인지나 태풍이 지나간 후의 동네모양새가 어떻게 되어 있을는지 예측할 수가 없구나!” 라고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1828년도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를 개표해본 결과 뉴잉글랜드, 델라웨어 및 메릴랜드에서만 승리한 애덤스는 83표를 얻는데 그쳤고 서중남부를 휩쓴 잭슨 은 178표를 얻어 압승하였다. “정치의 개혁을 하라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잭슨 이 생각 하도록 만드는 투표결과 이었으며 재임 중 잭슨 대통령은 그야말로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 한다. 그 “개혁”들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마침내 “우리들의 대통령”을 뽑았다고 열광했던 군중들은 잭슨이 국회의사당 에서1829년 3월에 취임식을 끝내고 말을 타고 백악관으로 가자 모두들 그를 딸아 백악관으로 가서 새 대통령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계속 백악관에서 내놓은 음료수를 마셔대며 떠나지 않아 결국 잭슨 은 살짝 빠져나와 자기의 하숙집으로 갔다고 한다.

잭슨 대통령의 여러 가지 별명중의 하나가 Old Hickory인데 Hickory 나무는 잣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로써 하도 딱딱하고 굽히지를 않는 탓에 Old Hickory Bat 라는 방망이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고 한다. 아마 잭슨이 돌멩이같이 지독하게도 단단한 성품으로 닥쳐온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는 점과 옳든 그르든 간에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이 아닐까 하고 생각은 되는데 이별명은 역사상의 인물로서의 잭슨 을 숭앙하는 사람이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의미에서 공통적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된다.

공화당의 심벌이 코끼리인데 민주당의 심벌은 당나귀(Donkey)이다. 왜 하필이면 시시한 당나귀일까? 아래와 같은 유서가 있다고 한다. 1828년의 대통령 선거 때 잭슨 의 지지자들이 “The Democrat” 라고 자칭해 가면서 공화당 ”주류”에서 벌어져 나가기 시작하자 애덤스 쪽에서 잭슨 을 ‘Jack Ass’ 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Ass는 ‘궁둥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미국사람들은 남을 헐뜯고 고의로 얕잡아 부르고 싶을 때 “병신 같은 놈”이란 의미로 ‘노새’라는 의미로도 이 단어를 쓴다. 처음에는 잭슨 쪽에서 “그래 우리는 ass이다” 라고 받아치면서 한동안 ass를 심벌로 쓰기도 하다가 말았는데 그 얼마 후 선거 홍보용지에 ass를 그려 넣는다는 것이 그림이 서투르게 그려져서 당나귀처럼 그려져 보였던 듯 하고 ‘Donkey 는 민주당’이라는 심벌이 고정되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된다.

앤드류 잭슨이란 인물의 유. 초년, 소년시대에서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일화와 성공담을 연구해보면 서민들은 잭슨 은 “우리들 중의 하나가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해도 틀림은 없는 것이겠지만 필자는 차라리 잭슨은 일찍이 30대 후반에 성공을 대강 다 이루어 놓은 엘리트로서 남부의 서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남부의 신흥귀족이라고 분류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잭슨 본인이나 많은 서민들은 그를 서민출신이라고 억지로라도 분류하고 싶어 했던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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