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년 인터뷰] 이기운 한인 농악단장, "무작정 농악이 좋아요"

2014-12-0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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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겨운 농악 장단으로 이민생활 시름 달랜다

▶ "무작정 농악이 좋아 이렇게 하고 있지만 내가 배운 농악장단과 악기 전수할 사람 없어 더 안타까워"

“예부터 농악이란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며 천둥이 치고 비가 오는 것이라 합니다. 꽹과리는 천둥, 장구는 비, 북은 구름, 징은 바람처럼 연주하라는 뜻이죠.”하와이 한인 농악단(Hawaii Korean Farmers Music Association)의 이기운 단장(사진)이 지난 2일 오전 11시 AM 1540 라디오 서울 ‘김설아의 국악갤러리’를 찾아 농악단의 지나 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수많은 한인 행사에서 언제나 행사시작을 장식해 동포들에게 친숙한 한인 농악단이지만, 이기운 단장의 의 목소리로 농악단에 대해 직접 듣는 기회는 그 동안 드물었다. 1996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쭉 농악단의 단장을 맡아온 이기운 단장은 이날 방송에서 농악단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샌드 아일랜드에서 5명이 옹기종기 모여 연습하던 농악단은 점차 규모가 커지고 내력이 쌓여, 열 여덟 해가 지난 지금은 24명의 인원이 맥코이 파빌리온에 정식으로 모여 연습을 하고 있다. 현재 하와이 한인농악단은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전통 농악을 선 보일 수 있는 단체다. 이기운 단장은 오늘이 있기까지 “농악단이 해체될 위기가 세 번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농악단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어렸을 때부터 농악이 좋았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그에게 농악은 이유를 불문한 ‘숙명’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장과 농악의 운명적인 만남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에 대한 질문에 이 단장은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에서 15살 때 처음 마당놀이를 접했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하다가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하와이로 이주하고 몇 년 후인 93년에 한라함 스튜디오에서다”라고 답하며 한라함 무용단과의 오랜 친분을 표했다.

한편 이 날 인터뷰는 농악단의 힘든 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인터뷰 중 “타국에서 우리 음악의 전통을 이어가는 농악단에 그 동안 지원이나 표창이 없었냐”는 질문에 이 단장은 짧게 “없다”고만 대답했다. 또 이 단장의 후임으로 농악단을 이끌어갈 인물이 없다는 현실에 스튜디오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지난 10월 시 청사에서 열린 비빔밥 유랑단 행사에 앞서 시청 앞 에서 신명나게 울린 농악장단은 당시 시 청사 앞을 지나는 주민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행사장 분위기를 띄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보여지는 것의 신명남과는 달리 농악단원들의 속내는 검게 타고 있는 것이다.


한인사회 전체가 보존하고 지원해야 할 예술자원에 대해 정작 한인단체나 정부 차원에서는 무관심하다는 현실은 여러 청취자의 안타까움을 샀다. 현재 농악단은 악기와 장비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연습과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단장이 직접 수십 개의 악기를 차에 실어 나르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현실에도 이 단장은 “3월과 6월에 있는 거리 페스티벌에서 세계의 관광객이 농악단의 공연을 보고 손뼉을 칠 때,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며 농악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열심히 참여할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농악단 문을 두들겨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윤다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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