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12-0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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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 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 황지우 (1952- ) ‘12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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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2월이다. 일 년을 더듬어보니 가산은 탕진되고, 정의도 진실도 탕진되고 세상에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어둠은 빨리 찾아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재빨리 돌아가 버리고 거리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만 남는다. 그 거리를 권력의 힘센 차가 부릉거리며 지나간다. 마지막 동전을 위해 엎드려 일하는 이들, 부서진 차같이 힘없는 이들을 짓밟으며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불경한 행군을 하고 있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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