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인생의 황혼

2014-11-2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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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희 / LA

좀처럼 자리를 물려주지 않을 것 같던 가주의 열기 속에서도 낙엽들은 보도를 덮어간다.

지팡이 의지하고 길 가던 노인,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 가던 길을 멈춘다. 자연의 황혼은 저렇게 아름답건만 인생의 황혼은 왜 이리 초라할까 탄식하며 다시 한번 석양을 바라본다.

식물이 때 되면 푸른 잎을 단풍으로 만들어 잎을 내려놓고, 다음에 오는 세대에게 영양을 만들어주듯이, 내게 주어진 인생도 내가 만들어 가야한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초라 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다. 황혼도 누릴 줄 아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도 해볼 수 있어야 다가올 미래도 멋지게 설계할 수 있으리라.


6년 전부터 나는 클래식 아카데미라는 노래모임에 나가고 있다. 회원들의 평균연령이 75세 정도 되니 80인 내게는 더 없이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할머니는 이런 것 못 하지’ 하는 표정으로 아이폰을 들고 마구 으스대는 손녀 앞에서 새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낼라 판타지아를 목소리를 가다듬고 불러본다. 손녀의 짐짓 놀라워하는 표정 앞에서 다시 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리운 금강산’을 목청껏 불러본다.

지난달 모임에서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함께 부르며 우리라고 못할 것이 무엇이랴, 노익장을 과시했다. 모임에는 노래를 아주 멋지게 잘 하는 남자 회원들이 15명 정도 되는 데 출석률 또한 100%다.

누가 인생의 황혼을 초라하다 했는가? 저녁하늘의 황혼보다 더 멋진 인생의 황혼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더 멋진 황혼을 장식하려고 클래식 아카데미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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