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참 특별한 달이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1월이나 12월처럼 한 해의 시작이나 끝도 아니요, 계절의 여왕 5월처럼 많은 주목을 받음에서 오는 특별함이 아니라, 오히려 주목을 덜 받음에서 오는 특별함이다. 꼴찌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야외로 나가기에는 볼 것 없어 망설이는 달이요, 안으로 들어오면 마지막달 12월을 알차게 마무리하기 위해 밀린 일정을 조절하는 과도기의 달로 여겨진다. 그러나 11월은 보면 볼수록 의미 깊은 달,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달, 사뭇 많은 교훈을 담고 있는 달이다.
역사적 의미로 보아도 11월이 다른달에 비하여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은 11월11일을 베터런스 데이 즉 현충일로 기념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 역시 1918년 11월11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날을 종전일이나 현충일로 기념한다.
미국은 또한 11월에 감사절을 두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국민이감사의 축제를 갖는다. 고국 역시 11월에 의미 있는 날들이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이 일어난 날이 11월3일이고, 소방의 날이 11월 9일이며, 순국선열의 날은 11월 17일에 자리하고있다.
기업체의 상업적 발상에서 나와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되는 이른바 빼빼로 데이도 11월11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 날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다.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그렇지 이 날은 농어민의 날이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농업의 기반인 흙(土)을 상징하는날짜인 11월 11일 (십十 +일一 =土)을 농어민의 날로 정하였다.
11월은 계절적으로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 시기는 이제 가을은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벌써 겨울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또한 애매한 시기다. 11월은 마치 하루 가운데 어둠과 새벽이 함께 있는 미명(未明)의 현묘(玄妙)함처럼, 아직과 벌써가 함께 공존하는 신비의 달이다.
가을과 겨울의 가고 옴이 교차하는 11월은 우리에게 신비 곧 ‘모름’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하고, 우리를 경탄과 겸허의 세계로 인도한다.
11월에 담긴 정신적 풍성함 역시 다른 달에 비하여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11월은 곱디곱던 형형색색의 단풍잎들이 빛바랜 몸으로 땅 바닥으로 내려앉고, 잎 무성했던 나무들이 서서히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며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달이다.
어떤 설교자가 서릿가을 11월처럼 생명의 생성과 소멸, 가고 옴, 세월의무상함을 그렇게 여실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지혜자 있어 꽃샘추위 비집고 나와 여름내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 맞으며 붙어있던 생명의 자리 미련 없이 털고 땅으로 내려앉는 저 낙엽처럼 내려놓음과 비움의 진리를 깨우쳐 줄 수 있을까. 11월은 온 우주에 두루 통하여 막힘없는 가르침으로 깨우침을 주는 깊은 산속 은둔 현자와도 같은 달이다.
11월은 또한 그 어느 달보다도 감사와 어울리는 달이다. 오곡백과 거두어들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감사이다.
모든 생명의 오고 감이 확연히 눈에 보이고,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는 솔로몬 왕(전도서 3장)의 고백이 손에 만져지는 11월을 통해 배우는 겸손과 겸허의 끝 역시 감사의 마음이다. 오고감 속에 있는 모든 인생의 종결어는 감사이다.
꼴찌에서 두 번째에 있는 11월은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그러나 나름 특별한 의미와 교훈을 지닌 달이다. 11월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그것이 쓸모 있는 것’이라는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쓸모(用)를 지닌 달이다. 깊은 깨우침을 주는 은둔 현자 같은 11월이 가기 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