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진 ‘예측’과 ‘예상’

2014-11-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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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 간 세계 과학계는 이탈리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 재판을 주목해 왔다. 이 재판은 지난 2009년 4월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에서 발생한 진도 6.3의 지진을 둘러싼 것이다. 이 지진으로 309명이 숨지고 엄청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지진 발생 전 이 지역에서 잇따라 일어난 소규모 진동을 조사했던 이탈리아 과학자 6명이 지진발생 위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문제가 됐다. 과학자들의 결론에 따라 지진위험 경보는 발령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인 4월6일 새벽 대형지진이 곤히 잠들어 있던 도시를 강타했다.

시민들은 분노했으며 검찰은 지진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과학자들과 공무원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2012년 1심에서 이들에게 금고 6년과 벌금형이 내려졌다. 그러자 세계 과학계가 들끓었다. 수천명의 과학자들이 무죄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소규모 진동이 강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과학전문지들도 지진 예측은 아직 ‘신의 영역’에 속한 일이라고 이들의 입장을 두둔했다.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자연재해인 지진.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진을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과학자들은 GPS, 인공위성 등을 이용해 땅에 작용하는 힘인 ‘응력’의 양을 측정하고 라돈가스 탐지, 지하수 수위 변화, 심지어 동물의 행동 분석 등을 통해 지진을 예측하려 힘쓰고 있지만 아직은 불가능하다. 조기경보 시스템으로 피해를 줄이는 게 최선의 대안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지질연구소는 연구소 웹사이트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지진을 예측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고, 또 그럴 가망성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예측’(prediction)과 ‘예상’(forecast)은 비슷한 뜻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지진과 연결돼 쓰일 때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즉 지진 예측은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떤 규모로 일어날 것인지를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확률적 진술이며 대개 장기적 차원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빅원이 30년 안에 남가주에서 발생할 확률은 60%”라는 발표는 예측이 아니라 예상이다.

지진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는 과학자들의 탄원을 받아들여 이번 주 이탈리아 항소심 재판부는 과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망자 유가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사법절차는 객관적 증거에 기초해야 하는 법. 유가족들의 정서는 이해되지만 정확한 지진 예측이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평소 철저한 훈련과 대비만이 지진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사실이다. 라퀼라 지진 피해가 엄청났던 것은 과학자들의 예측 실패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땅 속으로 15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지진 위협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라퀼라에는 건축 법규, 긴급 구호체계, 대비 훈련 등 적절한 지진 대비책이라 부를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라퀼라 참사는 그런 점에서 대표적인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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