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11-1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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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들어오셨는지
남은 여름마저 몰아내려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귀뚜라미 한 마리 아장아장
거실 안으로 뛰어든다

그냥 두면 누구의 발에 압사 당할지 알 수 없으므로
밖으로 돌려보내자고 생포하기로 하는데
그는 남의 속도 모른 채
붙잡히지 않으려고 잽싸게, 애타게 달아난다
이런 것이 짝사랑일 것이다

그냥 콱 움켜잡기는 쉬운데
손아귀 속으로 귀하게 모시자니 어렵다
지금 그를 생포하는 것은
이 가을을 다 생포하는 것이므로


사력을 다해 따라다니다가
손 안에 모시는 행운을 잡았는데
혹시나 저를 해치는 손길일까
버둥대는 몸짓
고이 풀밭에 내려놓는다

이 가을을 고스란히 내려놓는다


/ 정원도(1959- ) ‘귀뚜라미 생포 작전’ 전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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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든 작은 귀뚜라미를 풀밭으로 내보내는 시인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행여 다칠까 조심 조심, 말 그대로 온전히 내보내려 귀뚜라미를 뒤쫓지만 귀뚜라미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행여 잡힐세라, 이리 저리 도망을 다니니 저러다 죽겠다. 이 상황을 시인은 짝 사랑에 비유한다. 달아나는 연인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려는 애뜻한 마음. 그 따스한 손길에 귀뚤 귀뚤 가을이 마냥 깊어간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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