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11-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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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익으려는가
항아리 속이 부글거린다

비릿하고 들큰하고 야릇한 냄새가 소문처럼 번져서
비밀에 부치지는 못하겠다

잠깐씩 덮개를 열어 후끈 달아오른 항아리를 식혀준다
알맞은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술은 익기도 전에 발효를 중지하여 씁쓸하거나 시금털털해진다
(적정 온도를 찾아내기까지 겪었던 실수는 기록하지 않겠다)


담글 적마다 천상의 맛을 기대했다는
옛사람들의 기록을 뒤적인다.

국화나 솔잎 따위의 향기를 빌리기도 한다는 건
지혜와 술수 어느 쪽일까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발효한 현재를 지우면 지울수록 완벽해지는 것
그때, 누군가의 성공담을 훔치는 건 눈물겨운 일이다.
그렇지만

안주를 미리 장만하는 건
술맛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 같기도 해서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박미라(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등단) ‘열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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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한다는 것은 술을 만드는 일과 같은 것인가 보다. 몸이 후끈후끈 달아올라 도무지 비밀에 부칠 수 없는 그런 일인가보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요? 맛난 술이 될까요? 라고 누구에게 물어 확인할 수도 없고 다만 뚜껑을 열어봐야 되는 일. 비릿하고 야릇한 냄새 배어나오는 술항아리 하나 품은 채, 열애를 다스린다는 것은 그저, 주신(酒神)께 모든 것을 맡기고 속으로 활활 발효하는 그런 일인가보다.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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