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곳 내가 사는 곳 내가 살아야 할 곳에 연보라빛 꽃이 피었네
과거 현재 미래 아무리 들볶아도 못 먹는 풀꽃이 피었네
날아다니는 벌과 기어 다니는 개미가 벌개미취, 벌개미취, 취한 듯 꿀을 취하네
연약하지만, 지닌 꿀과 향기와 빛깔과 떡잎과 꽃대와 꽃심에 알맞은 독을 지녔네
그 뿌리 번짐 농사처럼 더디지만 가파른 비탈을 맡겨 보네
- 이향지 (1942- ) ‘비탈을 부탁해’ 전문
벌개미취는 한국에만 피는 꽃이란다. 들국화를 닮은 이 꽃이 우리네 인생살이처럼 비탈진 산길에 피어난다. 사람은 먹을 수 없는 꽃. 하지만 벌, 개미와는 취하도록 꿀을 나누는 꽃. 연약하여 어디 하나 제대로 쓸데가 없는 그 꽃에게 신께서 가파른 비탈을 맡기신다. 하늘 같이 맑은 눈으로 이 산길 저 골목 내려 보시던 신께서, ‘꽃아, 네게 비탈을 맡기느니라.’ 하시니, 꽃 피어난다. 천천히 느리게 곱게 벌개미취 피어난다. 애틋한 세상 하나 피어난다.
- 임혜신<시인>